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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6주간 금요일독서 (예레3,14-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27 조회수1,561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16주간 금요일독서 (예레3,14-17)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 주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6)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선민 모두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궁극적으로 실현될 선민의 종말론적 회복을 약속하는 14-19절의 내용 가운데, 본절 16절과 17절은 종말론적으로 회복될 선민 사회의 완전성 묘사하고 있다.

 

먼저 본문에서는 회복의 일환으로 번성과 풍요가 약속된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일이 이루어질 시점이 강조된다. 즉 비록 이방 나라의 포로 생활이라는 징벌을 통과한 이후의 번영과 축복일지라도 그 귀환의 시대를 기대하게 하는 '때' 이다.

 

본절에서는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귀환의 시대인 '그날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서 재산과 인구의 번성과 증가를 누리게 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내용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약속대로 포로에서 선민들이 귀환하였지만, 그들이 귀환한 이후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번영과 성장을 누린 적은 없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영적인 의미 알아 들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목자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실 새로운 계약의 백성인 신약의 성도들과 교회를 성장케 하시며,그로 인해 하느님 나라를 확장케 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본절에서는 하느님 임재와 현존의 상징이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증거였던 '주님의 계약궤' 가  5회나 사용된 부정어 '로'(lo)를 통해 지금까지 그 백성 가운데서 차지하였던 중요한 위치와 기능을 상실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북부 이스라엘은 분단과 함께 하느님의 계약의 상징인 '계약궤'와,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있는 예배의 처소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스스로를 배제시켰다. 이로 인해 북부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란 영광스런 신분을 잃고 말았으며, 그 중에 하느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소수의 남은 자들도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 동떨어져 있었기에 남부 유다 사람들로부터 하느님과 무관한 자들로 여겨지기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주님 신앙의 정통성과 주님 계약의 계승을 두고, 정통성이 없다고 여겨졌던 북부 이스라엘이 남부 유다와 함께 포로에서 귀환할 때에는  더 이상 '계약궤'의 유무를 두고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시기 도래할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하느님 백성들의 영적 성숙을  반영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계약궤와 성전은 선민들에게 있어 계약적으로, 신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일 뿐, 실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위치한 예루살렘,거기 거하는 예루살렘과 남부 유다 거주민들은 상징을 맹신하고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그 실체인 하느님의 계약과 하느님의 임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상징은 그것이 아무리 거룩하고 특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실체를 가리는 것이 된다면, 도리어 없는 것만 못한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 바빌론의 침공 당시 성전을 파괴하게 하신 것, 그리고 계약궤를 이동시키게 한 것(2 마카 2,4-8)은 이처럼 형식적으로 거짓된 신앙을 벌하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문의 사람들이 계약궤를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징에 얽매이거나 그것을 매개로 하느님을 신뢰하고 따르는데서 나아가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눈에 보이는 매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일치를 통해 하느님을 경외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본문의 표현 가운데는, 하느님의 백성들 사이에도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과거 성전과 계약궤라는 상징물을 내세우며, 북부 이스라엘과 자신들과의 구별을 강조하던 남부 유다 사람들, 그리고 동일하게 성전과 계약궤로부터 자신들을 배제시킨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 하나로 일치하며 오직 하느님과의 인격적 일치에만 마음을 둘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앞선 상반절에 이어 본문에서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의 부정어 '로'(lo)를 반복 사용하여 계약궤 기념이 더 이상 필요없는 시대 올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란 표현에서도 역시 부정어 '로'(lo)를 거듭 사용하여, 계약궤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거나 이방 나라의 침략에 의해 이동되어진 계약궤가 다시 제작되는 일이 더 이상 없는 영적인 성숙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러한 본문 표현 가운데는, 우상 숭배자들이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을 섬기던 것처럼, 선민들이 상징물에 불과한 계약궤를 맹신하던 일들이 있었음을 함축하며, 이것을 질책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계약궤와 더불어 성전을 맹신하던 남부 유다의 형식적 신앙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질책하는 의미 또한 내포되어 있다.

 

아울러 이것은 상징물에 불과한 계약궤나 성전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참된 신앙이 장차 하느님의 백성들의 심령에 견고히 세워질 날을 희망하게 한다.

 

계약궤와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하느님 백성들의 심령에 하느님의 계약을 새기시고 인호를 새기실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게 대체될 날을 희망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계약궤는 이제 성령께서 영혼의 역할을 하시는, 주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안에서 성체를 모시는 감실(Tabernacle)을 말하게 된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모신 성모님이 계약궤이며, 말씀과 성체를 모시는  우리 자신이 성령의 궁전과 새로운 계약궤 하느님 뜻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말씀이겠다.

그럴 때,구약의 계약궤도, 지성소도, 성전도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체험하게 되는 거룩한 것이 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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