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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0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06 조회수41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사순 제1주간 금요일]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의 율법으로는 결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중처럼 하느님을 잘 섬기고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지키는 민족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나라는커녕 민중들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조국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이고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항쟁이 일어나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민중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는 우리 인류가 지켜야 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이 곡해하면 율법이나 예언서도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율법이나 예언서를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이나 예언서의 의미를 참되게 알려주는 것이 복음이며 진실된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유대민족들이, 유대지도자들이 성경 말씀을 잘못 이해하였듯이 지금 우리의 복음해석도 예수님의 뜻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 율법은 무엇 무엇을 하지마라! 무엇 무엇을 하여야 한다!로 강제하여 민중들의 삶을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규제가 무려 1,521개가 있다는 글을 읽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크게 39가지 유형으로 구별하였고 각 유형별로 또 39가지씩 금지 조목을 정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글에는 금지명령이 365개며 실천명령이 248개로 총 613개의 규제 조목이 있다고 하므로  어느 숫자가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구속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악과만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은 단 한 개에 불과하였는데 인간들은 자기네 생각을 하느님의 뜻이라며 이처럼 엄청난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로지 단 하나의 율법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자비의 실천입니다. 

율법에서는 '살인하지 마라' 하였으므로 살인만 하지 않으면 율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이런 소극적인 생각으로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없으므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원수와 화해하면 살인은 저절로 없어지고 세상에는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소극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6개의 예를 들고 계십니다. 이를 6대 반제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예시에 불과하며 우리 삶의 전체를, 우리 사고를 전부 이처럼 자비의 실천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중 하나의 예가 오늘 복음인 "화해하여라."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개의 가르침은 극기하여라!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정직하여라! 폭력을 포기하여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자비" 에 모두 수렴되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고, 죄 짓지말고 극기하라는 말씀도 자비로운 마음만 있으면 결코 간음 등의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치가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오, 남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저급한 통치가 人治와 法治입니다. 法治는 무늬만 法治이고 그 실질 내용에 있어서는 人治와 동일한 것입니다.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그 법은 사람이 집행하므로 결국 人治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도 人治 때문에 국민들을 또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인 이런 법치보다는 자비의 德治를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런 자비의 덕을 쌓는 것이 바로 성변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보다 더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누구와 화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예물을 바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위해서도 빨리 화해를 해야 겠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다가 깊고 넓은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바다와 같이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가장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우리 인류의 영원한 등불입니다. 이런 등불을 함지 속에 감추고 있기에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6)하신 말씀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일부에서는 입으로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정반대의 행실을 하고 있기에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지탄까지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여 우리 이웃 모두가 아버지를 찬양하는 그런 사회를 꿈꾸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율법에서 자비로,
소극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전환하여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등불인 주님의 말씀이 지금 함지 속에 감춰져 있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함지 속에 감춰진 주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알려주는 교회가 되고
저희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 우리 이웃 모두가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상기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개인 사정으로 10여일 묵상 글을 게시하지 못하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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