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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어느 단계에 와있는가?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8 조회수526 추천수8 반대(0) 신고
 
 

나는 어느 단계에 와있는가? - 윤경재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8,22-26)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하느님께 나아가는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 피정이나 교육 그리고 묵상 나눔 등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깨닫곤 합니다. 그런데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집으로, 생활전선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하다 보면 방학을 만난 게으른 학생들처럼 생활 리듬을 잃고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습관이 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스님이 되는 것을 출가라고 표현합니다. 옛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나서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제자로 나갈 때 몸과 마음이 함께 구습에서 벗어나 새 탄생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머리도 삭발하고 가사도 입습니다. 우리도 세례 받을 때 세 번씩이나 끊어버린다는 결심을 선언합니다. 그 선언은 다시는 옛 모습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악마의 유혹을 끊고 성령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시고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그 마을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곳이며 진리보다 사리사욕을 더 원했던 곳의 상징입니다. 그가 떠나야 마땅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눈먼 이로 살아왔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분명히 보고 배울 터인데 자칫하다가는 유혹에 빠져 버릴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마을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그리스어 원문은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쓰는 apostello 동사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집으로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은총과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입니다. 사도(apostolos)라는 말이 이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사도는 가르침 받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전달하라고 파견된 자라는 뜻입니다.

  이제 눈먼 이는 과거에 동냥이나 다니던 자가 아닙니다. 그가 제대로 눈을 뜨고 처음 본 모습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온전하고 완성된 인격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동물들은 눈을 뜨고 처음 본 모습을 평생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그도 눈을 뜨고 처음 뵌 분을 평생 따를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진정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랑을 전하러 길나서는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열두 사도만 사도가 아닙니다. 흐릿하게 보던 것을 분명하게 깨달은 자가 진정한 사도입니다. 베드로와 열두 제자들은 아직 분명하게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보였으나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인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열두 제자들도 눈먼 이처럼 분명하게 사물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참모습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도 파견될 것입니다.

  자칭 신앙인이라 말하는 우리도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겸손 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의 눈으로 거듭 난 사람은 생활 터전이 더는 유혹의 마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으로 변화합니다.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는 누구보다도 각자가 잘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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