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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유와 치료의 차이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8 조회수1,020 추천수9 반대(0) 신고
 
 

치유와 치료의 차이 - 윤경재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루카 5,27-32)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간의 특성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자라났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길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피가 나면 의사를 찾거나 약을 발라 치료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냥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경향이 있답니다. 사소한 것 같아도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속의 어두운 면을 점점 키운답니다. 그런데 이런 상처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잠재의식으로 남아 직간접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 영향력은 표면의식보다 월등히 강해 자기도 모르게 한 성격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상대하게 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자주 폭발하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부부사이, 부자모녀지간, 형제자매간에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하며 오랫동안 숨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합니다.

  노련한 상담가는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고 합니다. 단지 그가 솔직히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주고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방향만 잡아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자기가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깨우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본래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육체의 병이라도 사람들 몸 안에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 시기를 놓쳐서 큰 병으로 악화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병든 몸을 스스로 낫게 하는 능력을 치유(healing)라고 부르고, 외부에서 도움을 주어 낫게 하는 것을 치료(therapy)라고 부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원리를 몸 안의 정기(正氣)가 사기(邪氣)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먼저 정기를 키워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치료하는 단계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특히 마음이나 정신적인 면을 상담할 때는 함부로 치료하려고 덤벼들어서는 오히려 악화할 때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저 상담가는 안내자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지 해결하려고 조급하게 서두르다가는 내담자가 그를 심판관으로 여겨 꽁꽁 숨어버리는 부작용만 들게 합니다. 누구나 치유할 능력을 타고 태어났다는 믿음을 내담자에게 확신시켜 주기만 하면 저절로 굴러갑니다.

  예수님과 바리사이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가 스스로 치유하도록 이끄셨지만, 바리사이들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직접 베어버리겠다고 설치는 돌팔이였습니다. 자기들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르니 자기들 기준대로 직접 재단하여 잘라내겠다고 나서는 자칭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칼은 활인검이 아니라 살인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울과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분 앞에만 서면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분께서는 온전하고 완성된 인격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하도록 받아주시고 나아가야 할 바를 올바로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가 자신을 드러내기만 하면 모든 상처가 치유의 은총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 아물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상담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때 바리사이처럼 성급하게 판단하려들지 말고 상대방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자신이 스스로 바라볼 여유를 갖게 이끌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자신도 내담자가 되어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동감(compassion) 또는 공감(sympathy)이라 부릅니다. 그것이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15,15) 라는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입니다.

 “나를 따라라.”하신 말씀은 레위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치유의 능력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서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 이끄시는 말씀입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스스로 치유하기를 기다리고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꿇고 말씀을 나누는 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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