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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발은 신어도 됩니까? . . . . . . . [박재만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7 조회수1,092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아무도 사제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  [교황 베네딕도 16세]
 
 
 
 

 우리 집안은 두 분의 할아버지를 순교자로 모신 일명구교우집안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순교자의 후손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나의 사제성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할아버지였다.

 내가 본당 신부님께 신부님의 추천서(소 신학교)를 받은 것이

 마치 신학교 합격 통지서나 되는 것처럼 

 나를 데리고 여러 성당을 자랑스럽게 참배하시고는

 마침내 원아드리아노 주교님과 노기남 주교님 강복을 받도록 하셨다.

 

 할아버지는 방학을 나보다 더 기다리셨다가

 내가 역에 내리자마자 내 손을 끌고는 동네방네 인사를 다니셨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 교우, 예비신자, 나중에는

 지방의 유지까지 찾아가

면장님, 이 아이가 제 손자인데 신학생입니다.”

교장 선생님, 이 아이가 신부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제 손자입니다.”

 그러면 신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별사람 다 보겠네하는 표정을 보면은 나는 너무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던 할아버지셨는데

 나는 돌아가시는 것도 뵙지 못했고 장례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행여 나의 신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해서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기 때문이다.            

 

                 . . . . .

 

 내가부제품 보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은 1974년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두고서였다.

 성소 책임자 신부님의 방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부제품을 받기에 하자가 없다고 자신만만했었는데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정신이 멍해져서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여쭈어 보았다.

부제품을 보류한다!”

 이것은 분명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류의 이유도 모호한 것으로 잘못된 식별일 뿐만 아니라

 개인 감정까지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그러나 나로서는 승복하는 방법 이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고,

 상처가 깊었고,

 아픔도 컸다.

 의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본당 신자들,

 까닭을 몰라 답답해 하시면서도 묵묵히 넘어가 주셨던 부모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대해주셨던 본당 신부님,

 유난히도 그해 겨울방학은 길게 느껴졌다.

 

 다시 찾아온 봄,

 난 이미 성직 계열에 들어선 같은 반 친구들과는 신분에서 뿐만 아니라

 직무와 활동에서도 완전히다름을 뼛속 깊이 느껴야 했다.

 

 학교 내 성당자리에서도 학년 번호 서열에서 밀려나

 1학년 학생들 옆에 앉아야 했고,

 영성체 때엔 영대를 메고 의젓하게 제대 위로 올라가는 부제들과는 달리

 나는 그들이 나누어 주는 성체를 받아 모셔야 했다.

 성당은 나에게 부끄러움과 갈등의 장소였다.

 나는 언제나 혼자 외톨이었다.

 

 다시 학기말이 다가왔다.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 보류했는데 설마 또다시 보류하지는 않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부제품을 재차 보류한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두번째 부제품이 보류되었다는 것은

 사제품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마저 불투명하다는 얘기였다!

 

 내 앞날을 내가 개척하지 못하고

 제3자의 손에 맡기고,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교구측에서는

 괴로움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에게

 교구측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가서 그동안 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교직 생활은 재미있었다.

 귀엽고 천진한 아이들과의 생활에 정이 들어갈 무렵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서품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드디어하는 안도감과 함께 참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제품이 미뤄지고 신학교에서의 생활도 거의 끝나가던 어느 밤,

 친구 부제 하나가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친구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자네가 부제를 받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딱 한가지 걸리는 것은...

  자네가 혹시... 기도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번개 같은,

 달궈진 불칼이 전신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모욕감과 고통이 뒤범벅이 되어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모면했는지 모르겠다.

 발가벗겨져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성령께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내 영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셨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때까지도 꽤나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진정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고,

 성령께 내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품도 중요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나한테 제기된 것이다.

 

 하느님은 제쳐두고 나 혼자서 무엇을 하겠다고 나댄 것

 이제까지 주도권을 쥔 분은 하느님이 아니고 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사명감과 자세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예수님은 성부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사시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명을 완수하셨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사제라는 직업인, 혹은 사업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가 진하게 던진 충고 혹시 기도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라는

 말은 그래서 더 없이 소중했고,

 지금까지도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떠올려서

 나 자신을 점검해 보게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고 있다.

 

  - 박재만 신부님은 전 대전 가톨릭대학장을 역임하셨고

    현재는 대전 성모병원장이십니다 -

 

 

        

  - 아무도 사제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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