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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금처럼.... [감곡 성당 김웅열 토마스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6 조회수748 추천수6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겨울연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마음으로 진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침에 눈을 뜨지 마자 신앙인의 3대 구호를 외쳐야 됩니다.

첫째,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둘째,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셋째, 나는 주님의 뜻대로 살렵니다.

신앙인의 3대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하느님 중심의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제를 도와서 사제관의 살림을 도와주는 사람을 뭐라고 그러지요?

제대에서 전례를 도와주는 사람을 복사라고 하는데, 사제관에서 신부님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 앞에 한 자가 더 붙어요. (식복사)


신부님들의 5대복 가운데 하나가 식복사 복이에요.

어느 본당 식복사 자매님이 있었는데 세상에~~ 뚝뚝하기는 그렇게 뚝뚝할 수가 없어.

1년 내내 그 자매에게서 말 한 마디 듣기 어려웠어.

경상도 자매인데 뭐 경상도 자매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물 한 번 달라고 해도 물만 갖다주고 말 한마디 안 하고....음식도 잘 하는데 여자다운 맛이 없어.

그게 늘 불만이었는데 어느 날 다른 때와는 다르게 이 자매가 이 것 저 것  옆에서 물으면서

“신부님, 꼭꼭 씹어 드세요.” 하면서 밥상 곁을 떠나지 않는 거야.

‘이거 왜 이래 닭살이 돋게...’

“아니~ 자매님, 오늘 따라 밥을 천천히 먹고 국을 천천히 먹으라고 하십니까?”
“이 말씀을 드려야 되나~~제가 아침에 국을 끓이다가 머리핀을 잃어버렸어요.

혹시 신부님 국이나 찌개에서 머리핀이 나올 줄 모르니까 천천히 드세요.”

‘어쩐지...안 하던 짓을 하더라~’

사제들의 오복 가운데 첫 번째 복이 식복사 복입니다.

솔직히 신부님들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어요?

재롱떠는 자식이 있기를 하나~~ 끼니때마다 간이 맞는 따뜻한 밥 먹는 재미로 살아가요.

식복사 하기가 쉽냐?

굉장히 어려워요...입이 무거워야 되요.

음식만 잘 한다고 식복사 자격 있는 건 아니지요. 큰 희생이 있어야 되요.


브라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아편 밀수를 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서 아편을 팔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었는데

갈 때 마다 숨기고 가는 방법이 기가 막혔어요.

이 여인이 아기를 낳아서 업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아이 포대기 안에다가 아편을 같이 집어넣어서

가지고 갔어요. ‘설마 세관원이 이것까지 검사할까!’

국경을 넘어서 기차가 역 가까이 가는데 세관원이 다른 때보다 배 이상 더 많이 있는 거예요.

‘야, 이것 무슨 냄새를 맡았나보다!’

가슴이 떨리면서 오늘은 왠지 꼭 걸릴 것 같아!

달리는 기차 창문을 열고 뒤에 있는 아편을 빼어서 ‘휙’ 집어던졌어요.

기차가 서고 세관원들이 짐을 뒤지면서 오는데 이 자매는 아편을 기차 밖으로  던졌으니까

자신 있게 아기 포대기를 풀었는데~~ 그곳에 아기는 없고 아편 덩어리 하나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던진 게 누구예요?

아기를 던진 거예요...아편은 그대로 있고...실화라고 그럽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죄의 보따리는 버리지 않고 정말로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신앙과 생명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때가 참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정말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의무로 주어진 소금의 모습입니다.


예부터 소금은 화폐의 기능을 했지요.     

황금은 없이 살아도 소금이 없으면 절대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金이지요.

이 소금에 있는 두 가지의 기능을 설명하고 같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소금의 첫 번째 기능 중에 하나는 양념 역할을 하지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간을 맞추는데 소금을 씁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 얼마나 맛이 없습니까?

병 때문에 할 수 없이 저소금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그렇게 고역스러울 수가 없대요.

아무 맛도 없고 국을 먹어도 싱겁고....다 싱거운 거예요.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에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소금과 같이 이 세상에서 양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겠는가!

공동체 안에서 주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양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또 맨 날 치고 박고 싸우는 공동체였다가도

그 사람만 들어오면 화해의 공동체로 변하게 하는 그 사람입니다.

또 침울한 분위기였다가도 그 사람만 끼면 웃음꽃을 피게 하는 그 사람이

소금의 첫 번째 기능인 양념의 역할을 하는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양념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쁨의 사람이다!’

 

이 기쁨은 이 세상 것을 소유할 때 느끼는 기쁨은 아닐 겁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이지요.

위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금과 같이 양념노릇을 합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한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싫어한다...왜? 그들의 얼굴에서는 기쁨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믿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것은 기쁨의 모습입니다.

외인들이 어느 자매님을 봤을 때

'나보다 가진 것도 못 가졌고, 나보다 훨씬 고통도 더 많고... 그런데도 저 자매는 나보다 훨씬

재미있게 산다... 무슨 힘이 저 사람을 저렇게 기쁘게 했을까!’

다른 사람의 가슴에다가 의문점을 심어주는 사람!

이게 바로 크리스찬의 모습입니다.


간디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한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들의 얼굴에서는 기쁨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이 성당에 나오면서 이 제대 앞에 오시면서 정말 기쁜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지난 한 주일동안 신앙인답게 내적기쁨을 느끼며 사셨습니까?

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기뻐 기뻐....’

하루에 천 번을 외친다고 기뻐지는 그런 기쁨이 아니지요?

 

기쁨은 희생의 결과입니다.                 

 

기도의 희생을 바쳐야 합니다.

포기의 희생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희생과 선행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올라오는 기쁨은 늘 나를 속입니다.

손안에 있는 바닷물처럼 빠져나가지요.

바닷물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을 느낍니다.

위로부터 오는 기쁨을 느끼려면 희생을 해야 되고,  소금의 기능인 양념의 인간으로

이 세상 곳곳에서 양념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소금의 기능은 부패와 정화의 의미가 있습니다.

생선을 잡아서 그것을 부패시키지 않으려면 소금을 뿌립니다.

뻣뻣한 배추에 숨을 죽이려면 배추에다 뭐 뿌립니까?

소금을 뿌리고 하룻밤을 지나면 그 뻣뻣한 배추도 숨이 죽습니다.


뻣뻣한 놈한테 소금을 뿌리면 팍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교만한 인간에게 성령의 소금을 뿌리면 겸손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그럽니다.

첫 번째는 거미 같은 인간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개미 같은 인간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벌이나 나비 같은 인간이 있습니다.


첫 번째, 거미 같은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자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미를 보십시오.

아름답지도 않은 실을 꽁무니에서 뽑아 으슥한 데서 가만히 기다리면서 뭔가 날아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뭔가 날아들면 사정없이 실로 친친 감아서 진을 다 빼먹습니다.


이 세상에는 남이 죽든 말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미 같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폭들이 그렇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칼로 사람을 쑤실 수 있습니다.

인신매매범들이 바로 거미 같은 인간들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백성들을 총칼로 죽이고 그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는 독재자들이 바로 거미 같은 인간들입니다.


두 번째는 개미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8~90%가 개미와 같은 인간들이지요?

개미는 정말 부지런한 곤충입니다.

물었다..놓았다..... 개미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개미의 가장 큰 약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눈길을 주지 않는 겁니다.

자기 일은 충실히 합니다.

그렇지만 니 일 니가 하고 내 일 내가 하자!

나 아쉬울 때 너한테 손 안 내밀 테니까 너도 나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말자!

이것이 현대인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무관심주의입니다.

자기 일,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성실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역시 기도도 이기적인 기도만 합니다.

한평생을 내 자식, 내 남편, 내 몸둥아리...내 건강만을 위해서 기도했지..

한 번도 내 집 울타리를 뛰어넘는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지향적인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자체도 개미형의 인간으로 변하고 맙니다.

삶 자체도 개미형의 인간으로 변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거미 같은 인간은 드러나지만 개미같은 인간은

우리의 대부분이 그 삶을 살기 때문에 아이들도 이기주의를 배웁니다.

부모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대로 배웁니다.

희생이라고 하는 거, 중요한 가치개념이 안되고 맙니다.


세 번째로 벌과 나비와 같은 인간이라고 그랬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의 형태입니다.

벌과 나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꿀도 열심히 모으지만 꽃과 꽃 사이를 다니면서 수정을 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삶에도 충실하면서 가끔은 눈을 들어 도움을 주는 이러한 모습입니다.


며칠 전에 마더데레사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인도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가난하기 때문에 한 밤중에 골목골목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거지로 태어나서 죽을 때도 거지로 죽으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고 앞뒤를 보아도... 아무도 나를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그 느낌!

그것만큼 절망은 없을 겁니다.           


인도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람을 못 받고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도에 있는 청소차들은 아침에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골목 죽어 있는

시체를 끌어다가 한줌의 재로 갠지즈강에 날려 버립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이렇게 먼지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그 죽어가는 사람을 데려다가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임종할 때

손을 잡아준 것 밖에 없습니다.

죽을 때만이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의 사랑을 한 번은 받아보고 죽는구나!’

그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죠.

그 일을 몇 년 하다가 죽는 사람은 많겠지만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쪼글쪼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이 전 세계의 성녀로 추앙을 받는 겁니다.

선행을 시작한 사람은 많지만 죽을 때까지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마더데레사 같은 분이 이 세상을 정화시키고 부패를 방지하는 벌과 나비와 같은 분입니다.


또 이런 분들이 누가 있습니까?

묵묵히 무료진료를 하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아프리카..... 만주로 의료선교를 나가고 후진국에 가서 돈 때문에 의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를 가지고 인술을 펼치는 사람도 상상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술을 베푸는 의사들도 벌과 나비와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도 넉넉하지 않지만 음식을 만들어 노숙자를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양이 얼마가 되든 자기가 먹을 것 반만 먹고  모아서

몇 사람이라도 먹이는... 그러한 익명의 크리스찬들이 많습니다.


또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억울하게 법 밑에서 죽어가야 될 사람들을 위해서 변론하는

인권변호사들이 있습니다. 그 변호사들은 돈을 보고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이 가진 자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가진 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없는 자를 억울하게 희생시키고 가진 자가 빠져 나옵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없는 자를 법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권변호사들은 한평생 권력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인권을 지켜줍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벌과 나비와 같은 분들입니다.


환경을 살리려고 애쓰는 환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신문에 계속 나왔던 지율스님이 터널공사 반대하면서 100일 동안 단식을 했지요?

그것을 보면서 ‘정말 여자들 독하다....어떻게 100일 동안을 굶을 수 있을까!’

그 스님이 100일 동안 굶으면서 오로지 먹은 건 뭐예요?

물과 소금

한 60일 지나면서부터 간장 물을 풀어서 먹었대요.

간장물 역시 소금이지요?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지켜줍니다.

그 사람이 무슨 출세를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그렇게 했을까요?

자연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정화시켜 주는 사람들이에요.

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크리스찬이 많기 때문에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겁니다.

소금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소금의 역할을 버리지 맙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도록 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5년 (연중 제 5주일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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