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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0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6 조회수39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성경에는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로 두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소제목을 정하여 단락을 구분하는 것은 이해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제목으로 단락을 구분하여 오히려 이해를 더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하여 새롭게 발견하였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신 말씀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하신 말씀은 성경에서는 소제목으로 단락을 구분하였기에 별도의 말씀으로 이해하여 두 말씀을 직접 연관시키지 않고 따로 따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제목으로 구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두 말씀은 하나의 말씀이므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배척을 받아 " 하신 이 말씀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의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저희도 저희가 맡은 일은 사사로움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게 그 일을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면 불의한 세력으로 부터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이익을 받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충실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정권의 눈치나 보며 엉터리 수사를 하고, 엉터리 판결을 내리고, 엉터리 기사나 쓰고, 이렇게 하여 출세를 하는 그런 짓들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출세하여 영화를 누린들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이므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서 좌천되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예수님처럼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느님을 뜻을 따르면 배척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예는 우리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번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님들의 인사이동을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복음의 의미는 이렇게 박해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으므로 이를 다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기 때문에 사흘 만에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지금까지 누리고 계십니다. 이 땅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한 생명을 누리실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뜻을 따르다가 박해를 받은 자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신 말씀처럼 언젠가는 그 분들의 얼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재평가되어 그 얼이, 그 정신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이며 이런 영원한 생명으로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한계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육신의 안위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모르고,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찰나에 연연하고 있으므로 죽음의 공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일수록 죽음을 더 두려워하고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칠 것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통만 더 따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회피하셨으면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영원한 삶을 살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 저희들이 예수님의 聖名이나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자신의 안위와 영전을 생각하며 줄서기를 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분들은 우리 교회 내부에서마저 박해를 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더욱 암담하여 서글퍼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박해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박해를 받아야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증거가 교회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서글플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다가 아니 예수님의 가르침인줄도 모른 채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 때문에 조직에서 박해를 받는 그 모든 이들이 참되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박해를 받는 좁은 문을 향해서 가는 길이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 길을 따르는 길임을 새롭게 하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종된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자꾸만 서글퍼집니다.
차라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처럼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언제나 이런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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