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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본으로 돌아가라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5 조회수711 추천수11 반대(0) 신고
 
 

근본으로 돌아가라 - 윤경재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 6,1-6. 18)

 

 오늘부터 사순시기가 시작합니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교만이 지닌 독특한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그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종교적 전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재탄생하는 부활을 전제로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사순 시기는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갖추는 시기입니다. 변화를 위한 아픔을 겪는 시기입니다.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자신을 정화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군중들을 가르치실 때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늘 아빠 하느님만 바라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 그것을 위한 교육방법으로 언제나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먼저 그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비유를 드셨지만, 늘 깜짝 놀랄만한 발상의 전환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트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신앙생활의 자세를 드러내줍니다. 사람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지표가 됩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언제나 변질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수록 무엇과 비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순 소박한 것일수록 꾸며보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본질을 까맣게 잊고 껍데기에만 매달리는 형국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사이와 종교 지도자들 또 에세네파로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남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고자 겉을 꾸미는데 온 신경을 썼습니다. 그 다름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 되고 자신만이 의인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옳고 그른 판단 기준을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 풍조는 점점 크게 자라나 아무 능력 없고 힘없는 사람들까지 그런 생각에 세뇌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죄인이라는 죄의식에 빠졌고 결국엔 자포자기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군중과 제자들도 스승께 자선과 기도와 단식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들만의 새로운 방법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겉을 꾸미지 말라고 했더니 또 다른 틀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기가 막히셨습니다. 

 오늘 복음말씀과 병행구절인 토마복음서 14장을 보면 예수님 생각이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대들이 금식하면 자신에게 죄를 불러올 것이며, 그대들이 기도하면 비난받을 것이며 그대들이 자선을 베푼다면 그대 영혼에 해가 될 것이니라.” 마치 금식과 기도와 자선을 하지 마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과격하게만 들리는 예수님의 교육방법이 여과 없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들을 때 늘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으로 새겨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종종 의외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상식을 허무는 듯한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질병과 사고, 실직, 죽음 등의 아픔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또 악한 자가 더 성공하고 선한 사람이 불행해지는 사례를 얼마나 자주 발견하게 되는지요. 이런 체험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분과 나의 관계는 끝났어. 그분은 나를 버렸어.”라고 체념하게 됩니다. “정말 하느님께서 계시는 게 맞아?”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교육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이렇게 놀라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방법을 본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교육방법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새겨듣는 네 가지 자세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하느님께서 놀라게 만드는 방법을 자주 쓰신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런 상황에 마주쳤다면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융통성과 적응성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런 일 뒤에는 하느님의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 그 목적을 이해하려고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실 때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은총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순 시기를 지내는 것도 이런 하느님의 교육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사순 시기를 맞아 “~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소극적 결심을 하기보다는 “하느님의 교육방법을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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