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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3 조회수546 추천수6 반대(0) 신고
 
 
 

 

 

  

 

기도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 윤경재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마르 9,14-29)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죽음의 세력도 이기신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분의 일생을 되 돌이켜 보면 우리민족의 고난을 맨 앞에서 막아 서셨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가난과 일제의 압제 그리고 전쟁과 혼란을 피하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마주치셨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우리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치와 아픔과 역경을 하나도 거부하지 않으시고 그 깊은 수렁 속에 발을 담그고 계셨습니다. 언제나 낮고 비루한 곳을 찾아 나서셨습니다. 아마도 그분의 몸은 만신창이였을 것입니다. 갖은 오해와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언제나 신앙인의 양심으로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따라 사셨습니다.


 그분이 태어나 선종하신 날까지 1922년-2009년도 우리민족의 역사를 미래의 역사학자는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수난과 혼란 속에서 발버둥 쳤던 시기라고 한마디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 격랑의 세대를 사신 우리 윗세대는 고난과 수치와 영광을 모두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았던 인물로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이름이 첫 번째로 거명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순교자 집안 출신으로서 사제 소명을 따르고자 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30세에 사제가 되기까지 교회의 결정에 순명했습니다.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뽑혀 일본 상지대학 철학과에 들어간 것도 사제 수업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때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 징용에 끌려갔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첫 번째 십자가였습니다. 광복 후 성신대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마치고 전쟁 중에 사제로 수품 되었습니다. 그때 이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면 그분은 사제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의 진가는 1968년 서울 대교구 대주교로 취임하면서 발휘되었습니다. 교회의 담장을 허물어 사회와 통하는 교회, 낮은 곳에 찾아가고 소외된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교회를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추기경 사목 지침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정하셨습니다. 이후에 그분의 삶은 두 번째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이였습니다. 소외당하고 고통 받으며 교회의 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고 함께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감옥이며 철거민 텐트이며 장애우 마을을 찾으셨습니다. 평생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위치를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셨습니다.


 그분의 세 번째 십자가는 이런 고난의 짐을 스스로 짊어지셨을 때 받은 오해와 비난의 목소리이었습니다. 절대 정치권력은 그분을 일일이 감시했고 훼방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교회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이때부터 추기경님께서는 평생 불면증으로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지독한 정신적 고통은 환자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걱정과 번민으로 날카로워진 정신과 육체를 어떻게 보존하셨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저도 추기경님의 불면증에 도움을 주고자 진맥도 하고 한약을 지어 드렸지만, 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보통 심각한 불면증 환자는 쉽게 짜증내고 우울해지며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공황장애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신이 피폐되다 못해 육체적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추기경님께서는 새 날이 되면 언제나 활력을 되찾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셨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머와 농담을 늘 지니고 사셨습니다. 깜짝 놀랄 재치로 좌중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추기경님께서 이렇게 큰 십자가를 지고 사셨다는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챘습니다. 몇몇 측근과 의료진만 알았습니다. 또 추기경님께서도 굳이 그 십자가를 내세울 리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몫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마도 당신께 주신 ‘바오로의 가시’로 여기시고 오히려 주님께 주신 은총을 감사히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평생 이 모든 십자가를 능히 견디시고 묵묵히 지고 사신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분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아니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하루도 버텨내지 못하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사목자로서 지닌 그분의 유머와 용기와 겸손은 오히려 십자가 덕분이었고 평생 끊임없이 바치신 기도 덕분입니다. 그분께서는 뛰어난 기도의 사목자이셨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당신께서는 늘 자신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겸손의 말씀입니다. 그분 자신이 기적의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매일 아침 건강하게 일어나 부활의 삶을 사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그분의 모습을 뵈려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든 50만 남녀노소 국민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새삼 진정한 사목자로서의 면모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을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소리쳐 외칩니다.


“이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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