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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는 제대로 축하할 줄을 모른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6 조회수427 추천수5 반대(0) 신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축하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일을 축하해주려고 하지만 제대로 축하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축하하라고 하면 무언가를 뻑적지근하게 과도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는 일상적인 일을 과하게 해야만 축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도해야 축하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불리 먹고 과음하고 큰 소리로 떠들고,
취하여 고성방가(高聲放歌)하고 새벽까지 파티를 하는 것을 연상한다.
하도 열광적으로 놀기 때문에 정작 순수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이따금씩 가뭄에 콩 나듯이 제대로 축하하게 되는데
이 때에는 마음 속 깊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더 깊이 알게 되고 더욱더 즐거워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좀처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할 뿐더러
열광하게 되면 전혀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며,
어떤 후유증 때문에 개운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복잡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른다.
진심으로 축하할 줄 모르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순수하고 단순한 삶, 기쁨, 사랑, 즐거움을 향유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여유가 없다기 보다는 죄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신화 즉 즐긴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무언가를 훔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러한 신경증은 교회 안밖에 보편적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신성한 분위기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왠지 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반역적으로 즐거워 하거나(하느님 몰래 즐기려 하거나)
아무 기쁨도 없이 의무만 다해야 한다
(진정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의무만 다하는 듯한 삶).
우리 모두 진정으로 축하할 줄을 모른다.
하느님 아버지밖에 선한 사람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악인으로 살면서
계명이란 의무에 시달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즐길 줄 모르는 것은
쾌락주의에 빠져 있어 불건전하게 즐거움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모두들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싫컷 즐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약에 취한듯한 황홀경에 빠지거나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되어야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마디 그라(Mardi Gras; 참회 화요일, 재의 수요일 바로 전 날,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사흘간의 축제 중 마지막날, Shrove Tuesday,Fat Tuesday, Pancake Day, Dollar Day라고도 함)에 아무 생각없이
광란하는 것이 이의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광란은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며 의식을 잃는 것이 즐거워하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약하며 만족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축하의 목적은 생일, 결혼식, 성공, 승리, 졸업, 탄생, 연말연시와 같은 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정의 날이나 사건을 함께 나누고 찬양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다.
누구나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는 아주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때를 축하한다는 것은 찬양하고 함께 나누며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명랑해지기 위하여,
느낌을 더 생생하게 갖기 위하여, 무아지경에 이르기 위하여,
쉬거나 편한 마음을 갖기 위하여 축하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즐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과도한 쾌락을 추구하며 의식을 잃을 정도로 즐기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후유증을 갖고 또 공허하게 느끼면서 지쳐서
그리고 혼자인 것 같은 기분으로 귀가 할 때가 많다.
후유증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즐기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자 일상의 삶 안에서의 혼인잔치와 축제와 기념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다.
사람들은 즐기고 살라는 메시지를 금욕주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면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무 죄도 지으시지 않고
즐겁게 사시는 것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고 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들은 죄를 짓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신앙 안에서 살 생각을 하지 않고
또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기쁨을 누릴 생각을 하지 않고 숨으려고만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리고 신앙 안에서 즐길 생각을 하지 않고
신앙과 거룩함에서 벗어나서 “하느님 몰래 즐기려고만 한다.”
이 때문에 과도하게 즐기려하고 의식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것이 신앙교육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기쁨은 하느님의 선물이지 금지된 선악과(善惡果)가 아니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칼럼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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