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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예로니모)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30 조회수1,560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9월 30일 (화)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성 예로니모 (345-420)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요 지혜이다. 성서를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도 지혜도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서를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과 희랍어의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라틴교회의 석학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이다. 예로니모는 345년경 현 크로아티아에 위치한 달마티아의 스트리돈에서 부유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10살의 소년 예로니모를 로마로 보내어 문법, 웅변술, 철학을 공부시켰다. 그후 트리어와 아퀼레야에서 수학하였고, 373년경 동방순례의 길에 올랐다. 도중에 병을 얻은 성인은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알레포의 수도원 생활을 하였다. 여기서 그는 히브리어를 배웠다. 379년 사제로 서품된 예로니모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난 나찌안의 그레고리오와 함께 교황 다마소 1세(366-384)의 초청으로 로마 시노드에 참석한다. 로마에서 교황의 비서업무를 맡으면서 로마의 경건한 부인들의 단체를 지도하였다. 이 단체에는 성녀 마르첼라와 바울라도 포함된다. 당시 로마교회의 성직자들과 심한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무기력함을 탓하기를 서슴없이 해내던 성인은 교황이 서거한 후 385년 로마를 떠나 생애의 종착역이 될 베들레헴에 안주하였다. 성녀 바울라와 딸과 여종들도 성인을 따랐다. 예수님의 출생지로 믿어지는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30년간의 대작업이 시작되었으니, 처음에는 성인이 지도하던 몇 개의 남·여 수도회의 수도자들을 위해 시작된 그것이 바로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희랍어 신약성서의 라틴어 번역인 "불가타"(Vulgata)역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솔직하면서도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성인은 가는 곳마다 몇 해씩 머물면서 그곳의 가장 훌륭한 스승을 찾아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열심한 학생인 동시에 완벽한 학자였고, 고위 성직자들의 상담자이기도 하였으며, 비범한 서간문의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신비적 삶의 체험과, 적절한 해학(諧謔)과 찬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많은 편지들을 썼고, 성서번역에 열중하면서 주석(註釋)을 함께 남겼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로니모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일찍이 안 사람은 없었다" 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로 예로니모는 만족할 줄 모르는 지적(知的) 의욕을 가졌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지고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모든 기력(氣力)과 시력(視力)을 잃은 성인은 420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오늘의 복음]  루가 9,51-56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51)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은 길을 떠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53)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54) 이것을 본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물었으나 55)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고 나서 56)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

 

  오늘 복음으로서 예수님의 전교활동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된다. 루가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한 시점을 근거로 갈릴래아 활동기(루가 4,14-9,50)의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상경기(루가 9,51-19,28)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9,44) 직후에 시작된 것은 사람의 아들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필히 죽어야 하며, 이곳에서 필히 부활해야 함을 암시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이르기 전까지 펼쳐질 예수님의 새로운 선교여행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분량으로 볼 때 루가복음의 1/3을 차지한다. 여행의 목적지는 분명 예루살렘이지만 이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지도를 놓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를 설정한다면, 당연히 갈릴래아 호수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직선경로, 즉 갈릴래아->티베리아->사마리아->세겜(그리짐산 근처)->베델->라마->예루살렘의 경로를 택할 것이다. 예수님의 일행도 같은 노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발대를 먼저 사마리아 지방으로 보내어 묵을 곳을 찾게 하신다.(52절) 그런데 의외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의 일행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53절) 사마리아 지방이 어떤 곳인가? 솔로몬의 통치 말기, 기원전 933년경에 히브리의 단일민족국가는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수도: 사마리아)과 남쪽의 유다왕국(수도: 예루살렘)으로 쪼개진다.(1열왕 12,19)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패망한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히브리족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곧 야훼신앙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혼혈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짐산에 새 성전을 세워 혼합종교를 신봉하였다. 따라서 정통성을 고수하는 유다인과 변질된 사마리아인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서로 냉대하고 적대시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예수의 일행을 거부한 처사는 당연한 귀결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냉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늘에 청을 드려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리자는 것이다.(54절) 이 대목은 구약의 엘리야가 북쪽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신을 섬긴 것 때문에 오십인 대장과 오십인 부대를 두 번씩이나 불살라 죽인 사건을 떠올려 준다.(2열왕 1,10-12)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그들에게 붙여진 "보아네르게스"(천둥, 또는 폭풍의 아들들)라는 별명답게 다혈질적이고 강한 질투심과 명예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격답게 이왕 가는 길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결판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차례의 수난과 죽음예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성공적인 상경과 예루살렘에서의 영광과 왕관이 번득이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이 두 제자의 야박한 마음과 잘못된 생각을 꾸짖으신다.(55절) 이 꾸짖음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다.(56절) 실제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바로 관통하지 않고, 당시 데카폴리스 지방과 사마리아 일부 지방, 베레아 지방을 두루 지나(17,11) 예리고를 거쳐(19,1)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를 택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길을 가느냐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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