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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는 이것을 믿느냐?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8 조회수617 추천수5 반대(0) 신고
 
 
 
 
 
예수님은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남매와 친하게 지내셨다.
늘 병치레로 고생하던 라자로가 결국 죽게 되자,
예수님은 3일이 지난 뒤에 마르타 자매에게 가서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다.
그 때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이 말씀을 믿는다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한다.
“속량(贖良)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속량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분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는 것이다.
세상 종말의 날에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는 것은 이 믿음이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났고
그래서 그분이 생명 자체이신 것을 믿는 것은,
“믿습니다”하고 말만 하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믿는 내용대로 살아야 한다.
자주 말하지만,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과 같은 생활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음은 영원한 죽음을 뜻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라자로처럼 다시 살아난다 해도
결국 또 사라질 육신의 죽음보다 더 큰 죽음,
영혼까지 죽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멸하는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을 사탄의 유혹에 팔아넘긴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부활은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이 극복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육신의 장애 속에 갇힌 인간은 언제든지 하느님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을 멀리하고 아무리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계속해서 하느님과 잡은 손을 자기 스스로 놓지 않을 때
계속해서 우리 안에 부활이 이루어지고
그로써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속량,
네이버 백과사전에 “돈이나 곡식을 내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거나,
국가 또는 주인에게 공을 세워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良人)이 되는 제도.”라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해줄 수 있는 속량재물이 바로 믿음이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믿음,
그분은 선한 사람에겐 상주고 악한 사람에겐 벌을 주신다는 믿음,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로 세상을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믿음,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비로소 하느님은 삼위로 한 분인 것을 믿는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실천할 때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서 속량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세상종말의 징표가 되었다.
그들의 멸망이 불시에 닥쳐왔듯이 세상의 종말도 그렇게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종말도 그렇게 올 것이다.
언제 어떻게 죽든지 간에 우리의 종말은 우리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은 불시에 닥칠 것이다.
그날이 언제 오든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면 반드시 속량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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