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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6일 야곱의 우물- 루카 21, 12ㄴ-19 묵상/ 매력적인 제안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6 조회수536 추천수4 반대(0) 신고
매력적인 제안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2ㄴ-1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적대자라도, 그가 아무리 저돌적으로 덤벼도 입을 다물어 버리게 만들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다인들, 원로와 사제들, 율법학자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논쟁이 늘 일어나는 것을 익히 보아왔다. 조마조마한 순간마다 지혜로운 진리의 말씀 한마디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멋진 능력과 통쾌한 활약을 옆에서 지켜보며 감탄한 제자들이다.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논쟁에 휘말릴 때 말발이 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한마디로 상대방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능력을 주시겠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제안이다. 마치 확신이 넘치며 호언장담하는 스피치 학원의 원장처럼 예수님이 근사하게 보였을 법하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궁극적인 힘은 말을 남보다 잘하거나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공박할 줄 아는 우월한 지적 재능에서 나오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올바른 행실이 아니다. 진리 안에 통합된 인격과 성품을 갖춘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진리를 향기로 전파한다. 얼마 전 미국 친구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적은 글귀를 읽었다.
 
‘복음을 설교하라. 만일 필요하다면 말을 사용하라.(Preach the Gospel. Use words if necessary).’ 진리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말과 행실을 넘어서는 차원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수많은 순교자는 생명을 바치는 희생으로 진리의 증언을 대신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서 최고의회 법정에 섰을 때, 단죄하고 모욕하며 거짓증거를 들이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한 아무런 변론도 하지 않으셨다. 한판 논쟁을 벌이기로 작정하고 그 속에서 트집거리를 잡으려는 인간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대사제가 대답할 것을 명령하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라고 하자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면서 그가 스스로 내뱉은 말이 옳은 증언이라고 긍정하셨을 뿐이다(마태 26,62-­64 참조). 그러고는 뒤집어씌운 죄목을 받아 안고 십자가를 진 채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들려주신 최고의 언변은 침묵이다. 어떤 말재간도 화려한 수사도 진리 앞에서는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지혜 역시 인간의 머리를 영특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머리를 써서 예수님을 팔아 넘길 계획을 세웠지만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었다.
 
사도 바오로가 깨닫고 증언하는 대로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게’(1코린 1,23 참조) 비춰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참된 지혜를 열어 보여주는 문이 되어 우리 앞에 서있다.
원영배(미국 로스앤젤레스 대교구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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