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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4 조회수1,133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Anyone who is so “progressive”
as not to remain in the teaching of the Christ does not have God;
whoever remains in the teaching has the Father and the Son.
(2Jn.4.9)
 
 
제1독서 요한 2서 4-9
복음 루카 17,26-37
 
 
매일 같은 자리에서 구걸을 하던 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옆자리에 또 다른 거지가 앉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제는 그 거지의 깡통이었지요. 글쎄 그 거지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은색 깡통으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내가 그래도 거지 짠밥도 훨씬 많고 이 자리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자기보다 훨씬 더 멋진 깡통을 가지고 구걸하는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에게도 저렇게 멋진 깡통을 주십시오.”

구걸을 하기는 하지만 항상 겸손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예쁘게 보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금으로 만든 깡통을 내려주셨습니다. 거지는 그 깡통을 보고는 너무나 행복했지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추운 겨울이 오자 그는 주님께 다시 기도를 드렸답니다.

“주님! 너무 날씨가 춥습니다. 제게 보온도시락을 주십시오.”

금으로 만든 깡통만 팔아도 보온도시락 수십 개는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얼마나 좋은 것을 가졌는지 모르기에,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은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것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그 은총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시기 위해서 오늘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노아 때의 일, 롯 때의 일을 말씀해 주시면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종말의 때를 깨닫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자기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마련해 놓으신 은총을 찾으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자기 찾아올 종말이기에 항상 깨어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사이에서 우리는 모두 선택(Choice)하며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언젠가는 다시 아무것도 없이 떠나야 하는 인생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안에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선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많은 은총을 선택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힘든 삶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앞선 그 거지처럼 말이지요.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총의 선물을 찾아봅시다.




소음과 정겨운 소리의 차이(임소은)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해 주신 얘기입니다. 교수님 특유의 예민함 때문에 생긴 사연이지요.

집을 옮길 때였어. 유난히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걸 못 견뎌 하는 남편이 이사 갈 집은 무조건 아파트 맨 꼭대기층이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집이 나오기까지 일 년을 기다렸지. 어느 날, 부동산에서 꼭대기층이 나왔다며 전화가 왔는데 천만 원을 더 줘야 계약할 수 있다는 거야. 당장 계약금을 들고 달려갔지. 그런데 우리 말고 네 명이나 그 집을 보러 와 있었어. 결국 그 아파트의 다른 층보다 삼천만 원을 더 주고 계약했지.

우리 집이 20층인데 아래층에 젊은 애들이 살아. 밤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그럴 때마다 남편은 삼천만 원이나 더 주고 계약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우리가 18층에 계약했으면 위층 소리 들으면서 더 힘들었을 거야.”라고 돌려서 하지. 나도 예민한 편이라 아래층에 사는 밤잠없는 젊은이들 때문에 잠을 설쳐서 너무 힘들었거든.

어쨌거나, 하루는 15층에 사시는 노부부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어. 노부부가 “20층에 사시니까 좋죠?” 하시길래 “위층 발소리는 안 들려서 좋아요.” 그랬지. 노부부는 웃으면서 “우리 층 밑에는 애들이 사는데 애들 떠드는 소리 들으면 좋아요. 우리 손자 손녀가 집에서 떠드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그 순간의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보는 각도에 따라 소음이 될 수도 있고 정겨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에게 달렸다는 거지. 그 뒤, 나는 잠을 잘 잘 수 있게 됐어.
 
 
Steve Barakatt - Angel Over Me
Karla Bonoff - The Water Is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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