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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3 조회수519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보수 개신교 단체에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21일 발표하였습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의 최희범 총무, 교단장협의회의 조성기 사무총장,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 등이 개인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성명서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균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른 능동적인 대처"를 주문했으며 비단 정부만 비판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이념대결적이고 낮은 단계의 정치게임의 관점에서 남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그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느님이 제 옆에 계시고 예수님이 제 옆에 계시면 극진하게 섬길 수 있지만 두 분 모두 하늘에 계시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인지를 저는 잘 모릅니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은 제 아버님께 효도하는 방법으로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님은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하셨기에 효도를 하고 싶어도 효도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음식도, 좋은 옷도 사 드릴 수 없으므로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제사나 잘 모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제사도 잘 모셔야 하지만 그 보다 더 효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자식 키우는 아버지가 되고나서 알았습니다. 자식 키우는 제 마음이 바로 아버님의 마음이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언제나 바르게 살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제사를 잘 지내는 것보다 더 아버님께 효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자식 키우는 아버지가 되고 보니 제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이 바로 제게 잘해주는 것임을, 아니 제게는 잘못해도 제 자식에게는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부모 마음이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며 예수님이 민중들을 생각하시는 마음 또한 이런 부모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제 아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제게 해 준 것처럼 오늘 예수님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굶주린 사람, 목말라 하는 사람, 갈 곳 없는 사람,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며 기도합니다. 모두가 같은 아버지의 자식들이므로 모두가 한 형제자매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당신에게 잘 할 생각하지 말고 너희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보살펴주며 오손도손 사이좋게 잘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제발 그렇게 좀 살아 달라고 오늘도 저희에게 부탁하고 계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청은 들어 주지 않고 제사만 잘 모신다 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결코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불쌍한 너희 형제들이나 잘 보살펴 주라고 하실 것입니다. 불쌍한 형제를 잘 보살펴 주는 형제들은 물론 제사도 잘 모실 것이며 그렇지 않는 형제들은 아마 제사도 형식적으로 모시거나 모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종교가 따로 있고 우리 실 생활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삶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부모 제사에 대한 제 비유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족 구성원의 도리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가르침인지, 이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처럼 한 아버지를 둔 가족의 도리와 한 아버지를 둔 우리 신앙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 하겠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의 도리는 가족이란 좁은 울타리 안에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 신앙은 그 울타리를 우리 사회로, 전 세계로, 더 나아가 전 우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내 이웃을 내 가족처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느냐로 기준삼아야 하며 다른 그 어떤 것을 우선하여 기준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임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소외된 그 모든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제 주위에는 무수한 예수님이 계심에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미 재림하셔서 고통 받고 계심에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을 주님으로 알고 그 분들을 진심으로 섬길 수 있도록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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