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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시]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다 / 교훈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1 조회수509 추천수5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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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작은 요한아(마리아 발또르따 애칭), 많은 사람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겠지만, 때가 되기전에 영원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이 세상 생애를 아는 은혜를 받는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저녁 늦은 시간이다
. 예수께서는 흰옷 위에 짙은 파란색 겉옷을 입고 혼자이시다. 올라가시며 나무들 사이로 깊숙히 들어가신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길을 많이 가신다. 예수께서는 일종의 자연적인 발코니에 이르시기까지 걸으신다. 거기서는 지금 하늘에 빛나는 눈처럼 총총 박혀 있는 별빛을 받으며 아주 고요한 상태인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예수께서는 늘 취하시는 자세로, 즉 서서 팔을 십자로 벌리시고 기도하신다오랫동안 기도하신다. 그리고는 일상 취하시는 자세를 취하신다. 즉 양손을 모으시고 팔꿈치는 무릎에 얹으셨다. 묵상을 하신다.

여러 시간이 지나가는 것같이 생각된다. 바람은 멎었다 다시 불었다 하면서 점점 더 세차진다. 호수도 이제는 잔잔하지 않다. 파도의 으르릉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는 명상에서 깨어나신다. 일어나셔서 호수를 바라다보신다. 새벽의 빛으로 베드로의 배를 찾으시다가 발견하신다. 베드로의 배는 건너편 호안을 향하여 애써 나아가고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겉옷을 꼭 여미시고, 빨리 내려오시는데, 올라오실 때 이용하셨던 길로 내려오지 않으시고, 직접 호수로 가는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신다. 어떻게나 빨리 걸으시는지 꼭 날아가시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파도가 후려치는 호숫가에 이르신다. 예수께서는 마치 몹시 출렁이는 물 위를 걷지 않으시고 매끈하고 단단한 마루 위를 걸으시는 것처럼 길을 계속하신다. 예수께서는 파도 위로, 거품이 하얗게 이는 파도 꼭대기 위로, 파도와 파도사이의 어두운 골 사이로 팔을 앞으로 내미시고 날아가신다. 겉옷은 뺨 둘레로 부풀어 오르고, 몸에 꼭 달라붙게 졸라매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날개를 치듯 펄럭인다.
사도들이 예수를 보고 무서워서 비명을 올린다. 그 소리가 바람에 불려 예수께 이른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나다.” 예수의 목소리는 맞바람이 부는데도 어렵지 않게 호수에 퍼진다.
“정말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만일 선생님이시면, 저더러 선생님처럼 물 위를 걸어서 마중 나오라고 말씀하십시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저 “오너라” 하고만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소매가 없는 속옷을 입고 있는 터이라 반라(半裸)의 몸으로 뱃전을 뛰어 넘어, 예수께로 향하여 간다.
그러나 배에서 50미터쯤, 예수께서도 그쯤 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는 겁이 더럭 났다. 그때까지는 그의 사랑의 충동으로 지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성이 그를 눌러 이겨서 …그의 목숨 때문에 몸이 떨리게 되는 것이다. 꺼지는 땅이나 움직이는 모래를 밟고 있는 사람과 같이 그는 비틀거리고 몸이 흔들리고 잠겨 들어가기 시작한다. 몸을 흔들고 겁이 나서 떨면 그럴수록 점점 더 빠져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내려다보신다. 정색을 하시고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에게 손도 내밀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신 채로 계시다. 이제는 한걸음도 나오지 않고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베드로는 빠져 들어간다. 발목이 사라지고, 다음에는 정강이, 다음에는 무릎이 보이지 않게 된다. 물은 서혜부(鼠蹊部)까지 와서 거기를 지나 허리쪽으로 올라온다. 공포가 그의 얼굴에 역력히 나타난다. 그의 생각도 마비시키는 공포이다. 이제는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겁을 내는 육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물로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는 공포로 인하여 얼이 빠졌다.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를 쳐다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이치를 따지고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시작하는 데에 예수를 쳐다보는 것으로 넉넉하였다.
“선생님, 주님, 살려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팔짱끼고 계시던 팔을 뽑으시고 마치 바람에 불리시고 물결에 밀리신 것처럼 사도에게로 달려가셔서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신다.
“오! 믿음이 부족한 사람. 왜 내게 대해 의심을 가졌느냐? 왜 너 혼자서 행동했느냐?”
예수의 손을 꽉 잡은 베드로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께서 화가 나셨는지 보려고 쳐다본다. 솟아나기 시작하는 뉘우침과 섞인 아직 남아 있는 공포를 가지고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배에까지 이르러서 뱃전을 넘어서 배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베드로의 손목을 꼭 잡고 계시다. 그리고 예수께서 명령하신다. “호숫가로 가자. 이 사람은 흠뻑 젖었다.” 그러시면서 창피를 당한 제자를 들여다보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만일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와서 너희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아들들 중의 하나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누가 부르기를 기다리지도 않는 때가 많다. 그리고 내게 대해서 배은망덕하는 아들에게도 달려가는 때가 많다.
너희는 자거나 생활의 일이나 생활 걱정에 붙잡혀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위하여 깨어서 기도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천사로서 너희 위에 몸을 굽히고 있으며, 너희가 너희들 자신의 힘으로 행동하기를 더 좋아하거나, 그보다 더 나쁘게는 악에 도움을 청하면서 내 도움을 거절하기 때문에 내가 개입을 할 수 없는 것보다 내게 더 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요. 내게는 아버지가 필요 없어요. 내 집에서 나가세요’하고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아버지와 같이, 나는 상처를 입어도 그렇지 않았던 만큼 모욕을 당하고 몹시 슬퍼하며 있다. 그러나 만일 나더러 ‘나가시오’하고 명령만 하지 않고, 다만 생활로 인해서 정신이 딴 데로 쏠려 있기만 하다면, 나는 불리기도 전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영원한 파수꾼이다. 그리고 너희가 내게 말 한마디를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것을 가끔 기다리는 것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큰 애정의 표시가 되고 얼마나 큰 즐거움이냐! 사람들이 내가 ‘구세주’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 말이다.

나를 사랑하고 또 필요한 때를 기다리지 않고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무한한 기쁨이 나를 깊이 감동시키고 흥분시키는지는 네게 말하지 않겠다. 그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은 그가 나를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고, 나를 ‘예수님, 예수님’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내 기쁨과 같은 기쁨이 그의 안에 가득 찬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엄마, 엄마’하고 부를 때에 하는 것과 같은 것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은 ‘엄마’라는 말 한마디만이 엄마의 입맞춤의 맛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들의 입술에서 꿀이 흘러나오는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가파르나움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는 내 명령에 순종해서 배를 저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빵의 기적을 행한 다음에 군중을 떠났었는데, 그것은 군중을 무시해서 그랬거나 권태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대해 악의를 가지고 있어도 그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율법이 짓밟히는 것과 하느님의 집이 더럽혀 지는 것을 볼 때에만 나는 분개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이익이 문제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섬기는 하느님의 종들 중에서 첫째가는 종이었었다.

군중들이 하도 무관심하고 느리고 너무 인간적이어서 자기 사명에 가장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용기를 잃게 할 정도인 것을 보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헌신하는데 진력나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바로 그들이 그처럼 부족하기 때문에 설명을 한없이 많이 해주고, 그들을 정말 뒤떨어진 학생들로 생각해서 그들의 정신을 가장 초보적인 발견과 입문(入門)으로 인도하였다. 마치 참을성있는 선생이 어린 학생들의 서투른 작은 손을 잡아서 첫번째 글자들을 그리게 하고, 점점 더 잘 알아듣고 행하게 하려는 것과 같이 말이다. ... 나는 그들을 영에게로 데려가기 위해 육체에게 나오게 했었다. 나도 우선 육체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탄은 그들을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육체에서 출발하는데, 나는 하늘로 인도하기 위해 육체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빵의 기적을 아버지께 감사하기 위해서 군중을 떠났었다. 그들은 수천 명이 그 빵을 먹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주님께 ‘고맙습니다’하고 말씀드리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도움을 받은 다음, 사람은 ‘고맙습니다’하는 말을 할 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 말을 했다. 그런 다음…그런 다음, 내가 무한한 사랑의 향수를 느끼던 아버지와 결합하여 하나가 되었었다. .... 내 영은 당신 말씀에게로 몸을 구부리고 계시는 것을 느끼던 아버지의 마중을 하러 달려갔었고, 나는 아버지께 ‘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은 내 기쁨이었다. ... 나는 호수에 떠 있는 내 아들들의 위험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떠났다. 사랑은 열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유령으로 생각했다. 오! 가엾은 아들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여러번 나를 유령으로 생각하고 도깨비로 생각하였느냐! 만일 너희가 항상 나를 생각하고 있으면, 나를 즉시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마음속에 아주 많은 다른 환영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너희에게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알게 한다. 오!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알았으면!
왜 베드로가 여러 미터를 걸은 다음 빠져 들어가느냐! 내가 그 말을 했다. 인성이 그의 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 그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그만큼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이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를 인정하게 하고 싶었고, 내 제자중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가 벌써 육체의 약점을 초월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가엾은 시몬은 시련 속에서 검증(檢證)을 주었지만, 그것은 조금도 숭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새로 태어나는 교회에서 선생님의 자비를 영속시킬 사람이 되는 데에는 그것이 필요했었다.
베드로는 위험에 처해 있는 그의 목숨 때문에 공포에 지배되었을 뿐 아니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순전히 ‘몸을 떠는 육체’가 되었다. 그는 깊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너희도 이와 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위험이 급박하면 급박할수록 그만큼 더 너희들 자신의 힘으로 행동하고자 한다. 마치 너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너희가 내게 바라고 나를 불러야 할 시간에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너희는 멀리 떠나가서 내 가슴을 죄게 하고, 나를 저주하기까지 한다.
베드로는 나를 저주하지는 않지만 나를 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정신을 내게로 부르기 위해 이지의 능력을 해방해야 한다. 즉 그의 선생님과 구세주에게로 눈을 들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 충동적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의심하는 죄를 미리부터 사해 준다. 이 충동적인 그가 은총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나면 다시는 마음이 흔들리거나 지치지 않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영혼들을 그의 선생에게로 데려오기 위해 신비의 그물을 죽을 때까지 꾸준히 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를 부르면 나는 걸어가지 않고, 날아가서 그를 구해 주며, 그를 단단히 붙들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다.

나는 베드로의 약함을 경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내 나무람은 지극히 부드럽다. 나는 지금 있거나 일찍이 있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 좋은 변호인이고 가장 마음 좋은 재판관이다. 모든 사람에게. 불쌍한 내 아들들아, 나는 너희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하는 나무라는 말도 내 미소가 완화해 준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이뿐이다. 나는 너희가 믿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가 믿음을 가지면, 나는 가서 너희를 위험에서 건져 준다. 오!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 주님, 구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부르짖음 한마디만 있으면, 온 세상에서 사탄과 그의 맹신자들이 즉시 패해서 쓰러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믿음을 가질 줄 모른다. 나는 너희를 믿음으로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증가시키면서 간다. 그러나 그것들이 마치 풀이 늪의 진흙 속에 떨어지듯이 너희 진흙 속에 떨어져서 파묻힌 채로 있다.
너희는 너희 정신의 물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치 않고, 썩은 냄새가 나는 진흙 속에 있기를 좋아한다. 어쨌거나 상관없다. 나는 영원한 구세주로서의 내 의무를 다한다. 그리고 비록 세상이 구원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할 수가 없더라도,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대로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제는 세상에 속하지 않게 된 사람들을 세상에서 구해 내겠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유의점
: 이 책은 현재 명동성당 서점과 가톨릭회관 서점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서점 등 가톨릭 관련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이 책에 대한 < 추천의 말씀 >과 < 비오 12세 교황님의 말씀 >과 < 신앙교리성성의 말씀 >은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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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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