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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0 조회수437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2008년11월20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이번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을 보며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산세를 과세하고 종부세를 과세하면 이중과세가 되므로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종부세는 이미 납부한 재산세를 차감하도록 설계하여 이중과세 문제를 해소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종부세와 재산세의 세율 차이만큼 종부세를 납부토록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을 보면
종부세 최저 세율(0.5%)과 재산세의 최고세율(1억원 이상: 0.5%)이 똑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종부세 최저 세율구간(0.5%)은 이미 재산세를 납부하였기에 종부세에서 재산세를 차감하면 제로가 되어 종부세를 낼 금액이 없습니다.
 
6억에서 9억으로 기준가격을 높여 종부세를 한번 무력화시키고
거기에 재산세와 동일 세율구간을 만들어 한 번 더 무력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국세인 종부세를 지방세인 재산세와 통합하려는 것은 종부세의 입법정신을 모르는 처사입니다. 지방세인 재산세로 통합하면 그 세금은 그 지역에서 모두 사용하게 되므로 국세로 존속시켜야만 부자 동네에서 징수하여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에 국고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며 실제는 지역간 부익부 빈익빈만 조장하고 있습니다.
 
<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월요일부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묵상 글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통곡인 聖哭과 통곡의 벽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경우는 제 기억에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예수님께서 3년여 동안 복음을 선포하신 이유도 바로 오늘 복음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으며 오늘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여야 예수님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곧 닥쳐올 불행을 미리 알고 있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할까? 또 그 불행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민족 전체의 불행으로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또 어떤 행동을 할까? '독사의 자식들'은 자신부터 살겠다고 도망을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은 불행을 미리 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막으려 할 것이며, 이런 불행을 예견한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며 이런 불행을 미연에 예방토록 알려주는 사람이 예언자입니다.
 
현 경제위기를 오래전에 경고한 인터넷 논객으로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은 미네르바를 지금 정부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심지어는 공영방송을 통해서 괴담 유포자로 박해하고 있지만 대다수 넷심은 그의 식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사실 진짜 괴담 유포자는 747괴담을 유포하여 이로 인해 주식처분의 기회를 잃게하여 다수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람이 바로 괴담 유포자입니다.  
 
예수님은 민족의 불행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불행을 막기 위해서 북 이스라엘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를 거쳐 이제 남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까지 내려오시며 장차 도래할 민족의 대 재앙으로 부터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힘으로는 그 불행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계셨기에 예루살렘의 입성을 목전에 두고 성전을 바라보며 이를 한탄하며 통곡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지금 이명박정부 기준에 의하면 괴담 유포자입니다.
 
예수님이 민족의 불행을 미리 알고 계신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어서 하느님께서 미리 가르쳐 주셔서 알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이를 미리 알려 주셨다면 전지전능한 하느님께서 그 답도 알려주셨어야 합니다.
 
미물인 동물들도 자기에게 닥칠 위험을 판단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연 재해가 있을 때마다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동물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 그런 지능이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미물만도 못하는 바보천치들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고 한탄해야 합니다.
 
사실 미물만도 못한 존재들이 우리 인간들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축산업을 하는 사람에게 들었던 얘기지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도 죽음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민족의 불행을 예고하신 사실은 여러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 54-56).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37)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상을 서쪽에서 구름이 올라오는 것으로 또는 시체로 비교하시며 대 재앙을 미리 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서쪽의 구름은 바로 서쪽에 있는 로마 제국이며, 독수리도 로마 제국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로마 제국은 미처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를 로마 제국이 알았더라면 복음서에서 이를 지워버렸을 것입니다.
 
신약 27목록을 선정하여 자비로 단일본 30권을 제작하여 신약 전권을 최초로 배포한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1세이므로 로마 제국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대목은 아마 이때에 전부 첨삭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쌍독수리 문장은 로마제국의 문장이고 지금은 러시아의 문장입니다. 콘스탄티누스11세 때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1453년)하였고,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11세의 조카인 소피아공주가 러시아 대공국 황제인 이반 3세와 결혼한 사실을 이유 삼아서 러시아는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쌍독수리 문장을 자국의 문장으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도 로마 제국을 꿈꾸며 흰독수리 문장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지구촌이 한시도 평화로운 날이 없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명색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 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니 인간들의 탐욕과 위선에 이제 그만 진저리가 납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신 이유는 오늘 聖哭을 통해 더 이상 사족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수년간의 로마 제국의 공격에도 함락당하지 않았으나 70년 어느 날 갑자기 성벽이 스스로 무너져서 성전이 함락당하고 말았습니다. 로마군이 설치한 목재로 만든 공격축대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성벽 밑으로 땅굴을 파서 기습공격으로 로마 군대의 공격축대를 파괴시켰으나 그 땅굴로 인해 성벽의 지반이 약해져서 애석하게도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성벽은 서쪽 성벽의 일부로 '통곡의 벽'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聖哭의 의미를 그 당시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이 알았더라면 유대 민족의 대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또 유대 민족들은 1900년 가까이 나라없는 유랑민이 되어 숱한 박해를 받으며 통곡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를 교훈으로 삼아서 온 인류가 진리의 삶을 사는 길만이 인류가 영원토록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숭고한 뜻을 알리고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교가 태생되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이런 숭고한 뜻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우리는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토록 경계하셨던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에 통곡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에서 통곡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여서 제물로 받친 인간들에게 '그래 고맙다' 하시며 '이제 너희들의 죄를 다 용서해 주겠다.'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천지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므로 그 질서에 반하는 그 누구의 청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天地不仁'은 알고 있지만 희생양의 대속신앙은 불민한 까닥에 아직까지 납득 할 수있는 합당한 논거를 찾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은 세계 어느 민족도 따르지 못할 만큼 유대 민족은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그런 민족에게 하느님은 왜 그토록 가혹한 벌을 내렸을까요? 이는 '선지자가 하느님이시며 예언자가 하느님이다'는 사실을 귀 있는 자는 알아들으라고 예수님은 통곡하시며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통곡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오늘 聖哭의 의미를 깨달아 다시는 통곡하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저희를 성령의 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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