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람은 쉽게 다치지 않는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0 조회수50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8년 9/19일에 올렸던 글입니다(39239).
 
 단 베리간(Dan Berrigan)은 만약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돌아오시면 한숨을 쉬시면서
“돗자리를 걷고 일어나 집으로 가거라.
너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피부를 받았지 않았느냐!”하고 말씀하시면서
환자가 상담사와 정신과 의사들에게 가지 못하게 하실지도 모른다.
 
 이 말에는 지혜와 꾸짖음이 함께 있다.
하느님께서 신경을 피부로 감싸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너무나 둔감한지도 모른다.
또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놀랄만한 회복능력과 믿을 수 없는 치유능력을 주셨다.
실제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튼튼하고 더 탄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하키 시합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중에
아주 덩치가 큰 애가 달려와서 나를 들이받았다.
나는 넘어져서 심하게 다쳤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세상이 멈춰서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와서 나의 상처를 봐주기를 바랐다.
나는 그대로 빙판에 누워 있었다.
아무도 이런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가운데 시합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참 지난 후에 누군가가 쫓아 와서 다친 데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 확인해 주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며 가능하다면 다시 뛰고 싶었다.
그 때 내가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매를 맞고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매는 맞지 않고 곧 웃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합과 스크럼과 상처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더 심리적인 것이 되며 더 복잡하게 된다.
활동적인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상처를 거의 받지 않는다.
실제로 상처는 받지 않고,
대신 스스로 자신이 불행하고 문제가 많은 것처럼 자기연민을 느낀다.
 
 사실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을 갖고 있다.
피부, 뼈, 영혼, 마음은 누르면 재빨리 원상태로 되돌아 온다.
사람의 모든 신체부위는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믿기 힘들 정도로 자기치유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들은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 입기도 하고 베이기도 하고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죽지는 않고 자연 치유가 되지만,
불구나 상처에 대하여 거의 사과를 하지 않으며 절망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과하는 법이 없다.
분명히 자신이 잘못하여 상처를 입혔건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상처를 주어 절망하게 했지만 절대로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신체부위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튼튼하며 잘 견뎌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고통스러워하며,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심장에 넣어주신
행복과 찬양이라는 축제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결코 완전하지 않지만 행복할 수 있고,
인생을 찬양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에 대하여 따지고 원망하며 스스로 불쌍히 여기기도 하며
다리를 절 이유가 없는 데도 다리를 절기도 한다.
우리는 큰 소리로 또는 조용하게 하느님께나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한다.
“당신이 내가 입은 상처를 안다면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약하다는 것을 조금만 알아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민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잘 받는가를 아신다면 그런 말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가를 아신다면,
내가 어떻게 거부당했는가를 아신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일종의 자기연민이며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이상을 주셨는데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원망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회복능력, 보다 많은 활력, 보다 튼튼함,
보다 많은 치유능력을 주셨고, 또 우리가 과민한 이상으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
예민한 것은 좋지만 우리들이 너무 과민한 것은 문제다.
우리들은 뼈가 부러지지 않았는데도 부러졌다고 생각하고,
우리들의 마음에 활기가 있는데도 활기가 없다고 생각하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연 치유능력이 있는데도 없다고 생각하며,
마비되지 않았는데도 마비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절름발이가 되고 드러눕기도 하며,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돌려댈 변명을 수없이 해댄다.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돗자리를 걷어 들고 집으로 걸어가야 한다.
 
우리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피부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하다.
이것을 알면 오히려 감사할 수 있게 되고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몸과 마음의 탄력을 믿어야지 절망하면 안 된다.
우리들은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으며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들이 잘못하거나 잘못하여 넘어져도 괜찮은 것이다.
설혹 상처를 입더라도
“나는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치료되어 축하 게임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어.
나는 치료될 리가 없어!”하고 말하면 안 된다.
누구나 반드시 치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치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시다.
우리들에게 자연치유와 같은 많은 역량을 주시고, 우리들을 튼튼하게 해주시고,
상처를 초월하여 사랑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아주 큰 상처도 각오하고 있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는 그의 자서전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세 종류의 영혼, 세 종류의 기도:
1)주님, 저는 당신 손에 있는 활입니다. 저가 썩지 않게 당겨주소서.
2)주님, 저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시옵소서. 저가 부러지옵니다.
3)주님, 저를 세게 당겨주시옵소서. 저가 부러지면 누군가가 저를 돌볼 것이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회복력이 있게 만드셨는가를 아는 사람은
감히 세 번째 기도를 드릴 것이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을 편집)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