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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탄의 영성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8 조회수828 추천수15 반대(0) 신고

 

 

 

 

필립  2,1-18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따듯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때입니다.

 

요즘은 아랫목 웃목이 없이 전체가 고루 따듯하지만

예전에는 추운 날 방에 들어오면 서로 따듯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형제들끼리 각축전을 벌이기도 했었지요.^^

 

 

예전의 우리 집에는 방마다 연탄 아궁이가 따로 있었습니다.

방 밑 구들로 연탄수레를 죽 밀어서 방을 덥히기도 했는데,

연탄이 두 장 들어가는 이 수레를 잘못 밀다가 엎어지면

다시 일으키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면 보다 안전한 아궁이도 있었는데

'두꺼비'(?)라고 불리는 철판 하나를 덮어씌워서 방 구들로만 열이 들어가도록 하면서

동시에 아궁이 위에는 솥을 하나씩 올려놓고 음식을 조리하거나 물을 끓여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집을 오니 연탄 보일러를 썼습니다.

음식은 부엌에서 따로 프로판 가스 레인지를 설치해서 사용했기에,

연탄보일러는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보일러에 연결된 관 안에 뜨거운 온수가 흘러 집안 바닥 전체를 휘감고 도는,

그야말로 중앙 난방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지만, 하루 두번씩 연탄을 갈아야하는 불편은 여전했습니다.

 

더구나 추운 겨울, 일찍 잠들었다가 연탄불 갈아야 할 시간이 되어

따듯한 이불 속에서 나와야 할 때마다 얼마나 귀찮았던지요.

늦은 밤 캄캄한 지하실에 혼자 내려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보일러 뚜껑을 열고 연탄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스 때문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띵해지던 고통을 매일 겪어야 했었지요. 

 

게다가 삼탄짜리 보일러는 저의 작은 키로 그 안을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높았습니다.

발판을 놓고 올라가서 곡예를 하듯 연탄을 갈아야 했는데,

가끔씩 그 일을 대신해주던 남편이 어느날,

밤에 연탄가는 일은 이제부터 자기가 맡겠다고 스스로 나서 주어서 짐을 반 덜게 되었지요.

  

 

그 때를 기억해보면, 매일매일 연탄 가는 일이 참 고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의 고생으로 다른 식구들은 따듯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탄가는 일 하나에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 연탄 자체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희생적인 사물입니다.

 

 

'연탄'을 추억하고 있으니 문득 필립비서 2장이 생각납니다.

 

필립비서 2 장은 하느님의 신분을 벗고 인간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우리도 서로에게 겸손한 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이뤄,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연탄'과 필립비서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요?

 

 

활활 불타고 있는 연탄이 생연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생연탄의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경험없는 새까만 후배인 젊은 연탄의 밑으로 말이지요.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랑의 불을 지피기 위해

하느님의 신분을 벗고, 우리의 밑으로,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다른이들 보다 밑의 자리로 머리 숙이고 들어가서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필립비서 2장에서 말하는 겸손입니다.

 

연탄불이 잘 붙기 위해서는 둘째로 밑의 연탄과 위의 연탄의 구멍을 맞춰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생각과 뜻에 우리의 생각과 뜻을 잘 맞출 때,

우리 서로의 사랑의 불도 잘 타오를 수 있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필립비서에서 강조하는 일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다음은 보일러의 마개를 살짝 열어두어 바람이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 때 연탄의 불은 두배로 활활 타오르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잘 연소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령의 바람을 향해 우리를 개방해야 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타는척하며 시커먼 그을음만 내는 존재가 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랑의 불을 밝히는 별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바로 필립비서가 말하는 '세상의 빛'이 되라는 이야기가 그것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명대로 다 타고 난 연탄재는 한 겨울 얼음판이 된 길의

미끄럼 방지재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합니다.

으깨어지고 밟히고 가루가 되어서도 자신을 밟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연탄재입니다.

 

이 정도면 '연탄'을 성인품에 올려도 좋을 듯 합니다.

불현듯, '연탄재' 라는 안도현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 도현-

 

 

 


 

 

늦은 가을, 월동 준비를 하면서 새삼 '연탄의 영성'을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연탄재' 만도 못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은 아닌지요.

이번 겨울은 심리적으로 유난히 매섭고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겨울,  온 주위를 따듯하게 해줄 '연탄'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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