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절약에 재미를 붙인 아버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4 조회수456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네요. 하늘이 무슨 값이 나가나요? 당신이 헐값에도 안 팔리는 하늘이라면 난 금싸라기 땅이에요.
한 지붕 한 마음으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둔 밥 한 그릇, 그것에는 사랑한다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밥그릇을 셀 수도 없이 받았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을 것인가. 절약에 재미를 붙인 아버지

옛날 석기시대에 남자는 밖에 나가 사냥을 하고 여자 는 가사를 맡는 역할 분담이 확실했다. 그 상황은 문명시대가 온 후 에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남자가 가정 경제를 이끄는 주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가정경제권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졌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남자가 돈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생활비는 물론 용돈도 얻어 써야 하던 시절 이었다. 그러다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부인의 발언 권이 높아진다. 그런 현상은 남편이 퇴직하고 난 후 경제력이 상실 되면서 자신감을 잃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혹자는 가부장적 사 회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 시기가 되면 그동안 직장일에 몰두하느라 아내와 자녀들에게 소홀했던 남자들은 정작 퇴직한 후에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아져도 마음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가족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 를 당 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경제권을 둘러싼 문제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에 도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하는 일에 가타부타 말이 없는 순종적인 어머니도 연세가 드시면서 아버지에게 잔소리도 하 고, 때로는 적당히 선을 그어 아버지의 행동반경에 제약을 두시는 등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점차 변해 갔다. 세월의 힘 덕분인지 어머니 나름의 처세술이 생기신 것이다. 더구 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한때 도박으로 전답까지 잃어 살림을 어렵게 만든 전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경제적인 부분 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고부터 서서히 어머니 쪽으로 자연스 럽게 넘어가기 시작한 집안의 경제권은 어느 새인가 어머니의 수중 에 완전히 들어갔고, 아버지는 간혹 우시장에서 번 돈을 용돈으로 쓰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어머니에게 돈을 타서 쓰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여느 때처럼 집에 가서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 고 있었다. 그런데 외출하셨던 아버지가 불쑥 들어오시더니 이렇 게 말씀하셨다. "여보, 나 돈이 필요하니 3만 원만 줘요." 그런데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단칼에 잘랐다. "내가 돈이 어디 있어요. 돈 없어요." 잠깐 눈치를 살피시던 아버지는 이내 포기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셨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시자 나는 어머니에게 슬쩍 여쭈었다. "아니, 신부 어머니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시면 어떡해요. 어머니 가 돈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좀 전에 제가 드린 용돈도 있 는데요." 그러나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아니,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냐. 내가 돈이 없다고 한 것은 너희 아버지 줄 돈이 없다고 한 거야." 어머니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 면 '당신에게 줄 돈' 이라는 문장만 생략되어 있을 뿐, 딱히 거짓말 을 하셨다고 보기도 힘든 것이다. "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돈 같았으면 이리저리 돈이 필요한 연유 를 말씀하실 텐데, 그리하지 않으셨잖니. 그러니 시시한 일에 줄 돈 은 없다는 게지." "아이고, 변호사도 울고 가겠네." 당시 어머니는 이렇게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훤히 꿰뚫고 계시 면서 상황에 따라 아버지의 돈줄을 놓았다 당겼다 하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경제권을 도로 넘겨 주셨다. 그 이유를 여쭤 봤더니 남자는 돈이 없으면 기운도 함께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셨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경로당 에서 노인들이 모여 토론을 할 때도 돈이 없는 노인들은 아무 의견 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남이 하자는 대로 따른단다. 그러나 집에서 경제권을 가진 노인들은 떳떳하게 자신의 의사를 개 진하고 그에 따라 돈도 내놓으며 큰소리를 친단다. 어디 나가서 남 편이 기를 못 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어머니의 깊은 뜻이었다. 남편의 기를 살려 주려는 어머니의 배려가 참으로 대단해서 어머 니께 참 잘하셨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으로 말했다. "나도 얼마나 편한지 몰라. 이것저것 걱정도 안하고 말만 하면 네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하시니, 오히려 내가 좋은 거지." 요즘 젊을 사람들 말로 하면 참으로 '쿨' 하신 어머니였다. 그 이 후로 아버지는 각종 세금, 공과금, 이웃집 경조사에 내는 축의금이 나 부의금은 물론 소소하게 집에서 드는 비용까지 모두 챙기셨다. 예전에는 통이 크신 걸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먼 길을 돌아 비로소 되찾은 경제권의 소중함을 깨달았는지 절약에 재미를 붙이셨다. 방 마다 사람도 없는데 켜 놓은 전등은 없는지, 쓰지도 않는데 꽂혀 있 는 전기코드는 없는지 살피며 돌아다니시는 것이 일과였다. 거기에 더해 겨울에는 보일러 기름도 매일 체크하셨다. 방이 웬만 큼 따뜻해졌다 싶으면 가차 없이 보일러 온도를 낮추셨는데, 어머니 가 날씨가 추운데 온도는 왜 내리냐고 해도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한참 추울 때 집에 가면 "신부야, 저것 좀 봐라. 자기가 기름 사 온다고 추워도 불도 안 때준다"라는 어머니의 불만 섞인 푸념을 들어 드려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너희 아버 지 이제 젊은 날처럼 허튼 데 돈 안 쓴다는 자랑처럼 들리는 것은 왜 일까.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