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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겁을 내느냐? ... 7 월 1일 복음 묵상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6-30 조회수559 추천수3 반대(0) 신고
 
 
 
 

<왜 겁을 내느냐?> ... 윤경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태 8,23-27)


  마태오 복음서의 구조는 5개의 담화문과 그에 따른 실천 행위가 연이어 나오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말씀과 실천이 함께 자리함으로써 언행일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첫 담화문이 복음을 선포하시는 복음적 담화문입니다. 우리는 5, 6, 7, 세 장을 산상설교라고 부릅니다. 이어서 8장과 9장에서는 그 복음이 말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겨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질병치유와 자연기적, 구마, 온전하게 고침 등 10가지 내용이 예수님께서 하신 복음 선포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풍랑을 가라앉히는 기적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이 있고 나서 이어 나오는 내용입니다. 죽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집에 가려는 제자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얼핏 지나치게 들리는 요청을 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는 실천적 행동입니다. 죽음을 따르는 사람과 생명을 따르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여 주시는 몸의 언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청에 제자들도 예수님과 한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습니다. 그때 큰 풍랑이 불어 배를 집어삼키려 하였습니다. 배 안에 탔던 제자들은 모두 생명에 위협을 느껴 죽을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편안히 주무시고만 계셨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갈릴래아 호숫가 키부츠에서 이틀 밤을 잤습니다. 날씨가 너무 맑고 쾌청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 새벽녘에 비바람 폭풍소리에 놀라 잠을 깨었습니다. 놀라서 방갈로 밖에 나가보니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데, 세찬 바람에 야자수 나무가 뽑힐 지경이었습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호숫가에 나가 보니 호수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호수 한가운데서는 더 심한 폭풍이 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표현이 정말로 실감 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니 작은 배 안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날 아침 미사는 세찬 바람 덕분에 실내에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간 교우들 모두 귀한 체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갈릴래아 호숫가에서는 종종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높은 헤르몬 산과 저지대인 호숫가가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벌어지는 자연 대류 현상 덕분에 일어난다는 설명입니다. 2,759m인 헤르몬 산과 해저 -210m인 갈릴래아 호수면 사이에는 약 3,000m 표고차가 있는데 두 지점은 약 150Km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골바람이 폭풍처럼 강하게 부는 것입니다. 이 바람 탓에 많은 어부가 죽거나 곤란을 겪었을 겁니다. 그런 무서운 경험이 있었기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한배를 타고 있었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태평스럽게도 잠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외면하시는 듯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서 저자가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 것과 풍랑 사건을 붙여서 배치해 놓은 숨은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가장 경원시하면서 동시에 죽음 앞에서 의연하지 못하고 굴복합니다. 죽음의 세력과 타협하여 죽음의 세력이 이끄는 대로 처신합니다.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치우는 짓도 서슴지 않고 벌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줄을 댄 사람은 죽음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죽음의 세력에게 보내버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는 죽음의 세력과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생명의 길로 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비록 육신은 죽을지 모르지만, 영은 죽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여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죽음의 세력에게 지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영원히 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요청입니다.

  호수는 유대인들에게 악령의 장소입니다. 유대인들은 산악 민족이므로 바다와 호수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호수는 악마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는 말은 죽음의 세력을 쳐 이기실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죽음 앞에 겁내거나 두려움을 느끼면 그 세력과 타협하거나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다시 생명의 길로 나서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과 부귀와 영화를 찾아 헤매는 일은 죽음과 입맞춤하여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행동입니다. 생명을 선택한 사람은 더는 자신의 에고를 내세우거나 외면을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유혹이 닥쳐와도 의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라는 질책을 다시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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