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어머니의 눈물방울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456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난 5월 31일 저녁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성모의 밤’ 행사에서 낭송한 헌시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도 많을 터이기에 <오마이뉴스>에 우선 발표합니다. 지난달 27일 저녁 ‘대한문미사’에서 낭송할 계획이었으나 우천 관계로 취소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현재 출간 준비 중인 시집 <그리운 천수만>에 수록됨을 알려 드립니다. ―기자 말


                                                    ⓒ김용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어머니의 눈물방울들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묵주를 지팡이 삼아
오늘 하루도 갈팡질팡하지 않고
저 장중한 저녁놀빛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삶의 의미를 잘 새겼습니다

세월의 덧없음 속에서
허무를 잘 헤아릴수록
지팡이에 더욱 의지하게 되는 이치를
더 없는 은총으로 받들어 감사하며
기억의 등마루에 얼비치는 지난날들을 돌아봅니다

나자렛 동네 우물가에서
처녀가 애를 뱄다고 미주알고주알 수군대는
여인네들 틈에 끼어 앉아 맞장구치며
요셉을 비웃는 말들을
쏠쏠히 귀에 담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언덕길에서 손에 들었던
올리브 가지를 팽개치고
바랍바를 외치는 군중 속에 섞여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아래에서 오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군중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관심과 방관의 관성은
오늘도 제 둘레에서
세상 곳곳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바랍바를 외치던 군중 속으로 저를 내몰고 있습니다

하여 5월의 훈향 속
어머니를 기리는 오늘의 아름다운 향연 속에서도
어머니의 오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왼손이 다치면 오른손도 아프고 불편해지는 이치를
눈물로 일깨우며 가르치고 계시건만
사람들은 오늘도 오른손이 왼손을, 왼손이 오른손을
때리고 상처 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묵주 지팡이에 이끌려
세상 곳곳을 다니며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용산에서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양평 두물머리에서도, 공주보와 함안보에서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또 덕수궁 대한문 앞과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 송전탑 앞에서도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를 뵐 수 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인 대자연을 망가뜨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몰면서도
오른손이니 왼손이니 따지고
교만과 탐욕과 폭력의 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십니다
찬란한 화원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우리에게 눈물 구슬을 주십니다
밀양과 삼척
평양과 개성공단에서 가져오신 구슬도 있고
어린아이들이 노예노동으로 시달리는
저 인도네시아의 주석광산에서,  
또 방글라데시의 붕괴된 8층 건물과
아프리카의 내전 현장에서 가져오신 구슬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그 눈물 구슬들을 우리에게 주시며
그 구슬들로 묵주를 만들라 하십니다
그 묵주로 지팡이 삼으라 하십니다

오늘도 제게
묵주라는 이름의 지팡이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골고타 언덕에서 발원하여
세상 곳곳을 비추어 온 눈물방울들이
60개의 꽃망울을 이루어 묵주가 되고
오늘 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 지팡이에 의지하는 힘으로
저 장중한 저녁놀빛 속으로 스러지는 날까지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며
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따르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른손이 왼손을 때리고
왼손이 오른손을 상처 내는 일이 없어지는 날을
뜨겁게 희구하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아멘!  


13.06.03 11:46 l 최종 업데이트 13.06.03 11:46 l 지요하(sim-o)
태그:'성모의 밤' 헌시, 묵주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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