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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짓 사랑의 거짓 봉헌자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 없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6 조회수456 추천수0 반대(0) 신고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2코린토 6, 1 - 210  /  제 1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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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그냥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삯꾼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고 할 것입니다. 삯꾼들은 이리가 달려오면 자기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이러합니다. 어린 양들을 해치고자 이리가 달려오면, 자기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어린 양들을(양들을) 지켜냅니다.자기 양들이 아닌 삯꾼들과 분명하게 다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이 이같은 하느님의 사랑 (사랑에서 난 사랑) 곧, 예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서 삯꾼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삯꾼들과 한 통속이 되어 그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세상의 영광(광야의 유혹)을 얻고자 하면 세상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고, 돈(이윤 기업체)을 얻고자 하면 돈의 지배를 받게 되어지며 삯꾼을 통해서 얻고자 한다면 삯꾼의 지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혹은 공동체가 예수님을 얻고자 하면 예수님의 지배를 받게 되어 집니다.하느님이 없는 경우와 하느님이 있는 경우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집의 주인이 되실 때가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님보다 돈이 공동체를 지배하고 봉헌자보다 삯꾼이 공동체를 지배하는 때는 이리가 달려와서 (어린)양들을 해치는 때입니다.공동체 안의 악에 의해서 버려진 이들은 고통을 당하고 공동체의 죄에 의해서 죽음의 문화가 단단해 집니다. 

그런 공동체 안에는 구원의 사명이 잊혀져 갑니다. 돈과 삯꾼들이 지배하는 기업체로 전락한 공동체는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여도 '그 죄악'의 심각성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이미 돈과 삯꾼들의 지배를 받는 종살이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제와 구원은 엄밀히 말하면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빵의 구제가 하느님의 구원과 같을 수 없지만 타락한 공동체는 마치 이를 동일시합니다.남들을 속이는 세상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거짓 사랑입니다.

다시말하면, 죽은 사랑이며 죽은 행동입니다. 사랑의 행동은 죽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위한 사랑은, 거짓 사랑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는 평화와 생명의 문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명이 없으며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고 있을 뿐이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는 봉헌자들은 수고와 고난을 피합니다.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하여서 삯꾼들의 의식수준과 마찬가지로 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당연시 여깁니다. 돈과 삯꾼의 지배를 받는 탓입니다. 

자기 안에 혹은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지 않게 되면 그 예수님의 공동체 봉헌자들은 버려진 이들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고통(예수님의 고통)에 결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짓 사랑이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하느님의 힘은 없습니다. 버려진 이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지 않는 봉헌자들에게서 하느님의 힘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며 봉헌자들과 삯꾼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여도 버려진 이들의 행복은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버려진 이들의 행복은 고통이 없는 평화이며 죽음이 없는 생명입니다. 하지만 거짓 사랑이 판치는 공동체에서는, 버려진 이들에 대한 고통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가 당연시 됩니다.버려진 이들을 통해 삯꾼은 봉급을 받으면 되고 봉헌자들은 편안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생과 수고와 인내와 역경이 없습니다.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고통 일치로) 자기 의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열정적인 순교의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죽은 것입니다.

삯꾼들의 힘과 돈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돈과 삯꾼들의 지배 체제를 만들고 이에 적당한 규정과 방침들이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힘은 묻히고 맙니다. 예수의 공동체는 착각합니다. 하느님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입니다. (1코린토 1장)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시고 있는지 그리고 또한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이 사시는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게 되어져야 합니다.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답게(직분에 흠없도록) 세상 삯꾼이 아닌 하느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이는 그리스도적 고통과 수난과 고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봉헌자들이(형제들이) 그리스도적 고통을 피한다면 결코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책임으로부터 다른 어느 누구보다 더욱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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