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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동이를 깨야...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4 조회수447 추천수9 반대(0) 신고






정오의 따가운 햇빛

먼 길을 걸어 온 듯,

피곤에 지친 분이

우물가에 앉았다.

 

 

"물 좀 주시오"

 


쾡한 눈, 갈라진 입술.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손을

무겁게 들어올리며

한 모금의 물을 청한다.


 

깊은 우물 속에 두레박을 내린다.

춤추며 떨어지는 두레박이

첨벙 물에 닿기도 전이다.

 

"네가 진정 나를 알았다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할것이다."

 

 

두레박을 올릴 생각도 잊고,

그 물이 무엇이고

어떻게 준다는 것인지 생각한다.

 

이상한 말을 주고받는 사이로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이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마실 물이 아닐지 모르겠다.

 

과연 이분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눈에서 생기가 솟는다.

지치지도 않고 말을 거는 것을 보면 

활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네 남편을 데리고 오너라" 

 

"남편이 없습니다."

거짓 대답을 하면서야 나는

그분이 무엇을 묻고 계신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정오의 햇살 아래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동네 밖 멀리 떨어진 우물까지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와 물을 퍼가도 

그럴수록 기갈만 더해갔다.

 


"네가 찾아낸 우물속을 들여다보아라.

저 깊은 곳에서부터

물을 퍼올리느라 얼마나 애를 썼더냐?

 

길어올리는 도중에 다 흘러내려서

마실 물은 얼마나 적었더냐?

 

물동이 하나 간신히 채워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또 얼마나 흘려버려야 했더냐?"

 

 

그랬다.

우물도 그것 하나만 찾았던 것도 아니다.

 

타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이 책, 저 책

이 강의, 저 강의

이 행사, 저 행사를 찾아 

온 정열을 소모하며 따라다녔던 것들이

다 내 우물들이고 내 남편들이었다.

 

그것을 마치 남편처럼 여기며 내 전부를 맡겼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했다.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찾으려했고,

그것들을 내 곁에 묶어두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였다.

  

 

"이젠 갈증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우물을 찾을 필요가 없다.

네 안에 샘솟는 물을 갖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될 테니까"

 

얼마나 기다렸던 말씀인가?

 

마르지 않는 샘을 내 안에 갖게 된다는 말은

오랜 갈망도 해소될 뿐 아니라

내 전부를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남편까지 얻게 되는 셈이다.

 

아니 그보다 내 자신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젠 물동이를 버려라. 

"두레박도 이제는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정든 물동이를 버리려고 하니

아쉬워졌다.

사실은 이번 뿐 아니라

여러번 버렸다 다시 주워들었다.

 

그분이 우물가에 지쳐 앉으신 것은

내 안의 샘솟는 물은 다 흘려버리고

낡은 물동이를 다시 집어들고

딴 우물을 찾고있는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렇다.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다시 주워들고 있는 물동이들.

이번에는 기필코 깨어버려야 하리라. 

다시는 주워오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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