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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36) 굿거리장단과 예수의 이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3 조회수53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4년1월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성 힐라리오 주교 학자 기념) ㅡ사무엘1,9-20;마르코1.21-28ㅡ

 

      (36) 굿거리장단과 예수의 이름

                                   이순의

                          

 

ㅡtroubleㅡ

내내 겨울 가뭄이 들던 하늘에서는 오랜만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느라고 시야를 송두리째 흐리고 있었다. 주절주절 주문 소리에 눈꽃송이 사이를 비집고 소리의 출처를 쉽게 찾아 낼 수 있었다. 뒷집 현관에 아주 젊은 처자가 음력으로 가는 해를 액 막이 하러 오셨는지 은빛이 빤짝빤짝 빛나는 스티로폼 돗자리를 뒤집어쓰고 쭈그려 앉아 있다. 뒷집의 젊은 무당은 시퍼렇기는  커녕 무디디 무딘 스테인레스 부엌칼을 들고 서서 무당의 폼을 잡느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돗자리를 쓴 젊은 처자는 몹시 신중하게 자기의 액을 풀고자 심각한 자세와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젊은 무당은 앞집 이층에 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칼을 들고 뒤로 살짝 빠져버린다. 나랑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주문 소리는 계속 되는데 칼도 그대로 왔다리 갔다리 흐느적거리는데 사람의 얼굴만 현관 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성호를 그었다. 내가 긋는 성호의 효험이 저 무당의 점 꾀를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으로 나는 십자표를 한다.

 

"돈 받고 액 막아 주기로 했으면 숨지 말고 신이 나서 칼을 휘둘러야지 숨기는 왜 숨어?"

내심 내 주님의 성령께서 저 젊은 무당의 신기를 약화 시켜 버렸나? 하는 생각에 재미도 나지만 나는 내 주님의 이름으로 점쟁이의 주문을 들어 드릴 수 없는 절단의 표시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확실하게 표시한다. 겨울에 하는 굿 장단은 무당집 안의 유리창들을 모두 닫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현관문을 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아서 조용하다. 서로 자연스럽게 상호불가침 조약이 맺어져 편안히 지낼 수 있다.

 

우리 아래층 주인집 사모님은 친정아버님이 목사님이셨고, 오라버님과 사위가 현직 목사님인 전도사이시다. 그런데 바로 뒷집은 무슨 장군이라는 간판까지 주택가 유리창에 써 붙인 무당 인지 점인지 하는 집이다. 더운 여름 날, 서울 강남 한 복판의 조금 옆 동네인 우리 뒷집은 엄청난 음식과 벙긋벙긋 웃는 돼야지 두상님을 모셔 놓고 징가징가 징징! 징가가 징징! 훠!~어이 훠!~어이 훠!훠! 사물놀이 노래패를 뺨치는 굿을 한 달이면 두세 번씩은 하는 거 같다.


큰 굿이 들어 왔을 때는 통돼야지 한마리가 털을 홀랑 벗어버린 허연 알몸End이를 자랑하며 마당의 정 중앙에서 발라당 옆으로 누워 육체미를 뽐내던 때도 있다. 같은 한복인데 그들이 입고 있으면 한복이 한복으로 보이지를 않는 것도 이상할 만큼 그들의 냄새가 있다. 유난히 펄렁펄렁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든 그렇다.

 

그런 날은 필수품이 등장하는데 아래층 사모님의 녹음기가 아래층의 뒤쪽에 위치한 주방에까지 원정을 나오셔서 용량 것 명령에 순종하며 열심히 성악을 쓴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

전도사이신 사모님의 툭 터지고 단련된 웅변은 일찍이 우리 성당의 어떤 신부님께도 들어 본적이 없는 오로지 굿거리장단을 이겨야만 하는 대 설교가 함께 목청을 돋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나긋나긋 했던 사모님의 목소리는 신기 들린 징 소리를 능가하는, 울림통이 최고로 확장된 전도사님의 스피커로 확실하게 변형되고 만다.

"아버지 하나님 저 마귀들을 물리치씨고 아버찌이의 나라에 영꽝꽈 씅리를 가져 오씨 옵쏘써. 하나님 아버지 쩌들에께 찌옥불을 면하여 쭈씨고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영꽝으로 마귀와 싸탄의 씨험을 물리치게 하씨고........."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이상한 색종이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부적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게 우리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훤히 다 보여서 두려움이 있었다. 드센 마귀들이 신심이 나약한 틈을 타서 나에게 침범 할까봐 애써 외면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여름을 날 때마다 벌어지는 홍역을 보면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창조주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믿는 하느님 아버지가 창조주님이신데 사모님만 창조하신 것도 아니고, 굿쟁이 가족만 외면하시는 것도 아닐 텐데 사람이 사는 세계가 벼라 별 모양을 하며 산다.

 

액막이 또한 모두가 하고 살아가는 기원의 형식이다. 식칼을 들고 젊은 처자를 앉혀 놓고 푸쎄푸쎄 훠이훠이 하면서 그 처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분명히 나쁜 것을 쫓아내느라고 업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예수를 믿는 사모님은 그들이 액이라고 물러나라 하신다. 온 땅덩이가 흔들릴 만큼 미신을 향한 대결의 사단을 벌이는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성인이요 군자들임에 분명하다.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며 끝나지 않을 설전과 섞일 수 없는 외면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철학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서 아무리 자기 소유의 집이라지만 굿 장단으로 푸닥거리에 열을 올리는 점쟁이의 배짱도 대단한 신앙인 것은 분명하다. 그에 맞서 예수의 이름을 더 크고 더 세계 외치시는 주인집 전도사님의 신앙은 둘째가라면 큰일이 날 징조가 역력하다. 그렇게 해서 주변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방청객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치열한 소음들(?)의 마찰 사이에서 종교적인 두려움 보다는 인간적인 편안함으로 소리가 끝나 주기를 기다린다.

 

높은 데에 계시는 분은 말이 없지를 않는가?! 종교! 신앙에서 조차 우월해져야 하는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종교와 신앙으로 타인을 해롭게 하지는 않았는가?

 

"이봐요 기왕 액막이를 해 주려면 현관문 뒤로 숨지 말고 당신의 장군과 할망께서 신명이 날 때까지 해야 떳떳하지 않겠소?"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그은 성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의 힘이 더 세져서 그 젊은 무당의 힘이 약화되지 않았나 하는 내 주님의 우월감에 으쓱한 기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주님의 권위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여 떠나가기 때문이다.


돌아 올 여름에도 우리는 "예수의 이름과 굿거리장단" 사이에서 방청객이 되어 많은 철학을 하며 더위를 이겨낼 것이다.

 

정월이 오시기 전에 섣달에 내리시는 겨울의 함박눈은 평화롭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ㅡ그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 있다가 큰 소리로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하고 외쳤다. 마르코1,23-25ㅡ

 

 

 

뒷집에서 엄청나게 큰 굿을 하던 날에는 서울 장안의 모든 굿쟁이들이 다 모여서 이상한 기운이 온 동네에 돌던 날에 저도 이렇게 사모님과 합심을 하였던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보통은 돼야지 머리만 놓거나 몸통만 놓거나 하는데 이 날은 몸통에 머리까지 달린 통돼야지를 목에 걸고 작두를 타고...... 아침부터 밤까지 대단했습니다. 놀이마당에서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뒷집에서 이럴 때는 정말로 싫드라구요. 소리는 못 지르고 십자가만 내다 걸은! (*_-)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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