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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아버지" - 2008.2.23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3 조회수563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2.23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미카7,14-15.18-20 루카15,1-3.11ㄴ-32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어느 특정한 곳에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체험하는 하느님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계시되는 자비로운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입니다.
 
미카 예언자가 말하는 하느님은
오늘 복음의 자비로운 아버지를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바로 하느님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죄를 못 본채 하시는 분,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
우리를 가엾게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못 본채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은 가엾게 여기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라면
하느님의 일은 ‘용서하시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새벽, 독서의 기도 시 우리는 계속 시편 매 구절 뒷부분,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노래했습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도 맥을 같이 합니다.
“주님은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살아계시고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과연 이런 하느님을 체험하셨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대조가 재미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상징하는 바는 작은 아들이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상징하는 바는 큰 아들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의 복음 이야기는
큰 아들과도 같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참 역설적이게도 아버지 곁에서 늘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이 큰 아들과도 같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분명 환상 속의 하느님을 믿었던듯합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자칫하면 큰 아들이 되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아버지와 가장 멀리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작은 아들과도 같은 이들이
바로 세리요 죄인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곁에서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사실 늘 아버지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의 자비를 체험하지 못해
타성에 젖어 감사와 기쁨 없이 사는
큰 아들 같은 성직자나 수도자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을 게 아니라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비단 수도원만 하느님의 집이 아니라,
깨닫고 보면 그 어디나 하느님이 계신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회개한 큰 아들이 되어,
회개하고 돌아 온 작은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제자리에 돌아 와 자비로운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이게 회개입니다.
 
매일 깨어 새롭게 자비로운 아버지를 체험할 때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주님은 회개하여 돌아 온 작은 아들 같은 우리들에게
생명과 사랑의 미사잔치를 벌여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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