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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는 이유 (신은근바오로 신부님)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0 조회수822 추천수6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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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 즐겁지 않는 이유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빛의 생활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기에 적선과 자선의 생활을 권고합니다. 베풀지 않고 받으려 한다면 신앙생활은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누가 거지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있으면서도 달라고 하면 그 역시 거지 근성을 지닌 것이 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희생하며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선이 되고 자선이 됩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감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생활이 빛의 생활이기에 악한 기운의 접근을 막아 준다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식에게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무엇이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을 밝게 하는 자선과 적선은 소홀히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선을 베풀고 그러한 목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면, 어찌 주님께서 축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선은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알게 하면 자랑이 됩니다. 모르게 해야 은총을 모셔 올 수 있습니다.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만이 아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면 그만큼 하늘의 힘이 줄어듭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사람보다 주님 앞에서 단식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최후심판의 기준

마태오 복음 25장은 종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비유만 달랑 세 가지 나옵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와 준비하지 못한 처녀의  비유, 종들에게 탈렌트를 주는 비유,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관한 비유입니다. 세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선택받은 이와 그렇지 못한 자입니다. 선택받은 이들은 좋은 곳에 가지만, 탈락한 자들은 별 볼일 없는 곳으로 갑니다. 전자는 주인의 뜻을 알아챘지만, 후자는 자기 생각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생각합니다.
‘얼마나 계명을 잘 지켰는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내었는가? 얼마나 죄짓지 않고 살았는가?’ 이러한 것
이 최후 심판의 기준일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그러한 내용은 없습니다. 평생 독신을 지키고 숱한 사람들에게 전도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교회의 화려한 지위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오직 이웃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에게 과연 당신을 대하듯이 했는지를 물으실 뿐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얼마나 사랑을 베풀며 살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계명을 지키고 많은 일과 업적을 남겼다 해도 사랑이 없었다면 구
원과 연관시키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천사의 언어로 말하고 남을 위해 자기 몸까지 넘겨준다 해
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1코린 13장 참조)는 말씀 말입니다.


살아있는 주님의 기도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라고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보여 주신 행동은 용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어떤 유혹이겠습니까? 사랑하지 않겠다는 유혹입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유혹에서 구해 주십사고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열어 놓는 행위입니다. 열어야 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보고 주님께서도 보십니다. 그런데 닫아
놓고 있습니다. ‘절대로 안 볼 사람이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결코 말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닫고 기도합니다. 어찌 신앙생활이 기쁘겠습니까?
마음을 닫으면 정성 없는 기도가 됩니다. 마음은 딴 곳에 둔 채 입으로만 바치는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하도 딱하게 여겨지셨기에 예
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남겨 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이 기도를 바치면 자연스레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전능하신 분의 능력을 받는 자녀가 됩니
다. 무엇이 두렵고 아까워서 마음을 닫고 살려는 것인지요?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이 기도를 바쳐 보십시오. 걱정이 사라짐을 금세 느낄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살아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성당입니다. 박해 시대 교우들은 미사와 영성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고통을 각오하며 찾아갔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은 게으릅니다. 돌아볼 것이 참 많습니다.

(신은근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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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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