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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 <15회> 친정어머니를 미워하다니-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0 조회수613 추천수9 반대(0) 신고
 

친정어머니를 미워하다니!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며느리는 많아도 친정어머니를 미워하는 딸은 많지 않다.


   친정어머니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한50대 자매가 있었다. 친정 부모는 미움 받아 마땅한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자기가 미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자매의 두 오빠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자신은 딸이라고 중학교까지밖에 안 보내주었고, 결혼할 때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혼숫감을 재대로 해주지 않아서 늘 불만이었는데 근래에는 남편의 사업을 위해 돈을 빌려 달랬더니 출가외인이라며 안 도와주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자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신교 개척 교회에 새로 부임한 어느 목사가 부임 인사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아주 큰 부자입이다. 저의 재산이 너무 많아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잘 알 수 없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3,500억 원 정도는 됩니다. 저는 그래서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 신자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제 재산은 두 아들과 한 명의 딸과 제 아내입니다. 아들과 딸에게는 1,000억 원씩 값을 매겼고 아내에게는 500억 원의 값을 매겨 합계가 3,500억 원입니다." 왜 아내의 값을 자식의 절반 밖에 안 매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고 500억이나 1,000억이나 우리 서민들에게는 무한한 값인 것이다. 10억 원을 받고 눈 하나를 팔 사람은 없다. 100억을 준다 해도 코와 귀를 팔지 않는다. 1,000억을 준다 해도 목숨을 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생명은 1,000억 원보다 1,000억 원의  1,000배보다 더 값지다.


   "자매님, 자매님은 1,000억 원보다 더한 생명을 부모한테 공짜로 받았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기른 공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자매님도 자식을 낳고 키워 봤으니 잘 알 것 아닙니까? 자매님의 부모님은 자매님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학교까지 보내주었고 넉넉하지는 않았겠지만 혼숫감을 마련해 시집도 보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만일 돈 으로 계산한다면 자매님은 부모님한테 수천억 원 이상을 거저 받은 것입니다. 수천억 원 보다 더한 것을 주신 부모님께 그까짓 몇 십만 원짜리 혼숫감을 덜 해주었다고, 그까짓 몇 백만 원의 사업 자금 안 대준다고 부모님을 미워합니까?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몇 천억 원 받은 것은 감사하지 않으면서 몇 백만 원 못 받았다고 미워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생각을 다시 해 보세요. 생각을 바꾸세요."


   나는 일장 연설을 하며 야단을 쳤다. 보통 고통에 대해 면담할 때는 조용히 들어주고 공감하며 같이 아파한다. 그러나 보모의 은혜를 몰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야단을 친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부모의 공로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속이 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불효하는 것만 해도 속상한데, 50이 넘은 중년 세대까지 이렇다니! 더구나 자신도 자식을 낳아 기른 어머니이면서 부모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주다니 은근히 화가 났던 것이다.


   부모의 은혜는 하느님의 은혜 다음으로 크다. 그래서 어떤 여건에서도 어떤 처지에서도 부모를 존경하며 감사해야 한다. 부모가 도둑질을 한다던가 비도덕적인 죄악을 저질러도 부모를 존경하고 감사해야 하는가? 당연하다. 부모의 옳지 못한 행동과 자신을 낳아 길러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 해서 낳아 기르신 부모의 공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 해서 수천억보다 값진 생명을 공짜로 받았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비록 지금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귀한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신 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약간의 용돈을 드린다고 해서 1,0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생명을 받은 빚을 다 갚은 것은 아니다. 지금 부모에게 약간의 편의를 제공하고 사랑과 희생을 드린다고 해서 부모의 은혜를 다 갚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다. 아니 10분의 1도 100분의 1도 갚을 수 없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열이라면 하나를 갚기도 어렵다. 하나를 갚았으면 아홉을 떼어먹는 것이다. 그러면 자식은 부모의 공로를 떼어먹기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떼어먹은 아홉을 자기 자식에게 떼인다. 자기 자식이 아홉을 떼어 먹으니까 결국은 본전이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 못 다 갚은 빚을 자식에게 갚음으로써 본전이 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 빚 을 갚는 길은 부모의 공로를 인정하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아비를 공경하게 하셨고 또한 어미의 권위를 보장해주셨다.··· 네가 역경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의 효도를 기억하시겠고···"(집회 3,2-15).

 

                 - 박용식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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