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고해를 하라고?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6 조회수467 추천수7 반대(0) 신고

 


죽어가는 딸을 살리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야이로.

느닷없이 나타난 여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딸이 죽고 말았다.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갑자기 끼어든 하혈병 여자가 무척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작 시간을 지체시킨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여자는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고 슬며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여자를 굳이 불러 세운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다급한 순간에 치유가 끝난 여자를 무엇 때문에 부르셨을까?

 

예수님이 치유가 끝난 여자를 붙들고 대화를 나누시는 것은

여자와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고

여자의 주술적인 믿음을 바로 잡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즉 여자의 병이 낫게 된 것은 옷자락을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간절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공개하기 부끄러운 병이 걸린 여인에게

굳이 자신의 치유사실을 말하라는 것은 특별한 까닭이 있을 것 같다.

 

예수님은 가끔 다른 곳에서 만난 병자들에게도 물으시길 좋아하신다.

“낫기를 원하느냐?”

“건강해지고 싶으냐?”

 

다 아시면서도 왜 예수님은 여자에게,

아니 우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원하는 바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길 원하실까?

..................

 

 

정신과 의사나 심리 치료사는 환자나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돈을 내고 그들을 만나 속시원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생각과 기억들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실수나 잘못, 죄와 허물들을 입 밖으로 내놓는 과정에서

벌써 치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

고해도 비슷하다.

고해하고 있는 과정에서 응어리진 감정이 걷히며

그때까지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해결책까지 얻는 수도 있다.

 

입 밖으로 생각을 드러내 놓으며 자신만의 옹졸함과 편견을 벗어나게 된다.

난마같이 얽혀있는 생각들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하나씩 풀어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바로 그런 과정이 잡다하게 얽혀있는 의식 속에서

속속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자 앞에서도 치유가 가능한데

하물며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하겠나.

주님이 용서해주신다는 믿음 아래서 행해지는 고해이기에

보다 근원적인 영혼의 씻김과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입을 열어

사람들 앞에 드러내놓게 하는 예수님의 마음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자는 더 이상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다.

치유를 증명하기 어려웠던 병이지만,

여자의 치유가 만인 앞에 공공연하게 인정되었다.

여자는 이제 치유 능력을 훔쳤다는

또 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도 하느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여인에게 주고 싶었던 예수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고해성사가 이렇게 많은 은총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판공성사 때는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하게 될 때도 많다.

무엇보다 자기의 죄를 입으로 꺼내놓는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도 너무 죄스러워

고해성사 때문에 떨어져나가는 교인이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 고해실로 찾아가는 그 행위에서

벌써 치유와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고해는 또한 우리에게 신앙인의 기본자세를 가르친다.

자신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고 분노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자만하지 않는

낮아짐과 순종, 비움을 배우는 것이 고해다.

 

그렇다. 그렇게 낮아지고 텅 비워진 이들에게

해방과 자유와 평화, 그리고 기쁨만을 가득히 담아주시려는 것이

알면서도 우리에게 꼭 물어보시는 예수님의 의도이다.

 

 

 

 





 
 

음악: Bellini의 오페라 "Norma" 중 "정결한 여신"- Filippa Giordano (1974~)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