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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3일 야곱의 우물-마태28,16-2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03 조회수436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6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고 증거할 수 있는 굳센 믿음을 허락하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했던 절친한 사람들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디에서 만나 무슨 이야기로 절절하게 될까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십니다.(마태 28,7.10)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전도 사업을 시작하셨고(4,12-17), 제자들을 부르신 곳입니다.(4,18-22) 이제 주님은 제자들을 갈릴래아에 다시 불러 모으시며(28,16)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들’한테 전도를 시작하시려는 것입니다.(18절) 갈릴래아는 유다 지방과는 달리 이방인이 많아 “이민족들의 갈릴래아”(4,15)라고 불리던 곳이지만, 이제는 지명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만민을 위한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고 굳이 갈릴래아의 특정 장소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오복음에서 ‘산’은 계시가 내리는 상징적인 장소인 만큼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실 계시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1; 17,1 참조)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 드리는 것’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는 명백한 흠숭의 자세지만 이 극적인 만남에서 일어나는 의혹은 유한한 인간이 지니는 한계일까요?(28,17) 제자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느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고 선포하시며(18ㄴ절. 참조: 필리 2,5-11; 1티모 3,16) 그들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자 사명을 부여하시고(마태 28,19-20ㄱ)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십니다.(20ㄴ절)

제자들이 받은 사명은 모든 민족을 주님의 제자로 삼아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세례의 수여와 계명을 준수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19ㄴ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예수님과 우리가 맺는 새로운 계약의 표지가 됩니다.(예레 31,33; 에제 36,26 참조) 세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이루어지는 새 생명의 성사로서(요한 19,34; 1요한 5,6-8 참조)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마음에 새기는 것”(신명 4,39)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의 상속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로마 8,14-17)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모든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의 새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제부터 제자들이 한다는 것입니다.(마태 28,20ㄱ)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한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으로 이는 예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특별히 마태오는 산상설교와 교회 공동체 설교에 실린 윤리적 지침들을 일상생활 안에서 지켜나갈 때 참된 제자가 되어 교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고 권고합니다.(마태 5-7장; 18장)

그러나 이 새로운 삶에는 언제나 도전이 따르기에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ㄴ)고 현존을 약속하십니다. 그 옛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며 선민을 돌보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의 새 백성인 교회와 함께하시며 교회 공동체를 돌보실 것입니다.(16,18 참조) 주님은 기쁨만 아니라 고통의 시간에도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교회와 우리의 사명에 능력과 힘을 부여하시는, 곧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1,23 참조)

그 옛날 유다지도자들과 오늘날 현실주의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하고 부인한다 해도 부활하신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다시 만나시며, 그들을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이 세상 끝까지 당신 구원의 역사를 계속 펼쳐 나가실 것입니다.(28,16-20 참조)


묵상 (Meditatio)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새삼 제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되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제 삶이 사람들한테 어떤 증거가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19-20ㄱ절)는 말씀은 잊고, 저만 잘하면 된다는 소극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렀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ㄷ) 하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을 믿어 생활하는 사람, 열정을 다해 믿는 바를 전하는 사람만이 제자 됨의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곧 ‘임마누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8,20ㄴ절 참조)

기도 (Oratio)
당신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이옵니다. 제가 맹세하고 실천하니 당신의 의로운 법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시편 119,105-106)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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