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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고운 빛깔로 받은 선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8 조회수434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고운 빛깔로 받은 선물
                              이순의
 
 
 
 
 
처음
산에 갔을 때는
새로 온 농장 댁이라고 소개를 해야만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농사짓는 솜씨가 부족합니다.
잘 도와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숙이고
열심히 숙여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을 알리느라고
늘 머리를 조아리고 다녔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농장에 와서 일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 났지만
때마다 적격인 솜씨를 가진 작업 인원을 불러
늘 얼굴들이 새롭기만 했다.
그 중에는
솜씨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솜씨가 나쁜 사람도 있고
솜씨가 나빠도 천천히 충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솜씨가 좋다고 믿었더니 망쳐 놓는 경우도 있고!
 
시간은 경험을 동행하고
경험은
사람이 가지는 만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많이 화를 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횟수는 줄고
바빠지고 조급한 아침을 맞고
저녁에는 계획한 결과에 급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성령께서 찾아오셨다.
<너 어찌하여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는가?>
그 한마디 성령의 음성에
그만
가슴을 쥐고 울었었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가진 자가 부족한 자에게
건강한 자가 병약한 자에게
사장이 종업원에게
농장 댁이 작업반원들에게
어른이 아이들에게
부리는 자가 부려지는 자에게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교우들에게
군주가 신하에게
임금이 백성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
.
.
얼마나 많은
세상의 위계질서 안에서
항구히 고개 숙여
인사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려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실행되지 않는 것이구나.
라고 스스로 응답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분들이 내 농장에 오심에 감사하고, 그분들이 하루 해 동안 땀 흘려주심에 감사하고, 그분들이 안전하게 마침을 감사하고....... 이런 제 마음이 변하지 않게 이끌어 주십시오. 아침에는 오셨으니 기쁘게 환영하게 해 주시고, 낮에는 악다구니도 쓰고 싫은 소리도 해대며 일을 할지라도 저녁에는 그 하루의 은총에 감사하는 인사를 그분들께 받치게 해 주소서. 이 마음 변치 않도록 우리주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켜주소서. 아멘.>
 
그리고
우리 주님의 은덕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혹시
낮에 일을 그르쳐 심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분은
일부러 찾아가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드린다.
 
<일을 하실 때는 서로 잘 해야 하니까 무례하게 굴었지만 집에 가실 때는 잊고 가십시오. 저희 농장에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오셨듯이 저도 이 먼 산골에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왔습니다. 초보인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농작물이라는 것이 대충하여서 얻어지는 소출은 없지 않은지요. 그러니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를 구하시고, 집에 가셔서는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사랑 받고 존경받으시는 가족이시니 오늘 하루의 일일랑 잊어버리시고 내일은 좋은 마음으로 만납시다.>
그런 결과로 받은 선물이다.
 
가을 어느 날에
일을 하시다 말고
한 분이 밭에서 나와 언덕으로 가셨다.
소피라도 보러 가시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저렇게 고운 빛깔의 선물을 꺾어와 
종이도 없는 즉석 답사를 낭독하셨다.
<우리들은 젊어서부터 지금꺼정
가리지 않고 일을 하러다녀서
많은 사장님들과 농장주들을 만나보았는데
아침마다 버스 도착하는데 서서
어서 오십시오 라고
환영해 주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저녁에 갈 적마다
도로가에 서서
고개를 그렇게 깊숙이 숙여서 
무사히 집에까지 안전하게 가시라고 인사해 주는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없제요.
처음에는 몇 번 하다가 마실 줄 알았는디
이렇게 가을꺼정 해주시니께
이제는 우리덜도 차에서 내리는 순서마다
먼저 내리는 사람은 
사모님맹키로 인사를 하게 되었제요.
이 나뭇잎이 어찌나 곱든지
꼭 꺾어다가 디리고 싶었제요.
고맙습니더.>
 
 

 
 
그리고 그 고운 빛깔은
재가 되고 부서져 바람결에 날아갈 때까지
동행을 하였고
다음 해에도 변함없이 인사를 했다.
버스가 도착할 자리에 서서 기다리다가
<어서 오십시오. 저희 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마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가시고, 행복한 저녁 되시고, 잘 주무시고, 내일은 또 건강하고 반갑게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모두 탑승하고 나면
버스의 문을 닫고
반드시 도로가에 서서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멀리서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신다.
올 해도
겸손의 머리를 숙여
감사의 은총을 드릴 것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셨으니.
아멘.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시는 빗물처럼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는
모두의 마음을 고운 빛깔로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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