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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14일(금) 聖메토디오, 聖엘리사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3 조회수436 추천수0 반대(0) 신고



6월14일(금) 음 5/6

聖메토디오, 聖엘리사


 


메토디오(6.14)

성인명

메토디오(Methodius)
축일 6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847년
같은이름 메토디우스



콘스탄티노플의 성 메토디오(Methodius)


 



시칠리아(Sicilia) 섬의 시라쿠사(Siracusa) 출신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
고향에서 공부한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궁중 관리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을 인정한 황제 미카엘 2세가 강력히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년을 봉직한 그는 수도자가 되었고,
키오스(Chios) 섬에 수도원을 세웠으나
총대주교 니케포루스(Nicephorus)의 요청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성상과 성물 공경의 합법성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자
그의 선임자인 니케포루스(Nicephorus)와 테오필루스 황제는
그를 고문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7년 동안 옥살이 하는 동안 황제가 죽고 그의 아내인
성녀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가 섭정에 오르자 이번에는 정세가 일변하였다.
성녀 테오도라는 성상 공경을 반대한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 메토디우스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즉시 콘스탄티노플 시노드를 소집하고
성상에 관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칙령을 재확인함으로써,
이번에는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11월 11일)와의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종증으로 운명하였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성상과 성화를 통해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신

성 메토디오 님이시여,


훌륭한 성상을 통해
주님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엘리사(6.14)

성인명

엘리사(Elisha)
축일 6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9세기경BC
같은이름 엘리세오, 엘리세우스


성 엘리사(Eliseus) 예언자


 



성 엘리사(Eliseus)는 엘리야(Elias)의 계승자로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라는 뜻이다.
엘리사는 대략 기원전 850-80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지야, 요람,
그리고 여호아스 재위 기간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구약성서에는 그에 관한 대목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신명기계 역사서인 열왕기 상하권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큰 단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엘리야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19장과 21장, 열왕기 하권 1-2장에,
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2-9장에 나타나며
그의 죽음 이야기가 13장 14-21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엘리사 개인에 관한 설화적인 이야기들과
사마리아의 역사적인 격동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아벨 므홀라 출신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1열왕 19,16-21).

열왕기에 등장하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적에 대한 것이다.
또 각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립된 이야기로 나타나며,
엘리사의 생애에서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일어났는지 등의
시간적인 연계성도 표현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다만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타나며
이 기적들은 특별하게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또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엘리사는 ‘예언자’라는 명칭과 함께 자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칭되었다.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들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엘리사가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엘리야와 함께 예언자로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엘리사는 야훼 신앙을 저버린 오므리 왕조를 거슬러 계속해서 투쟁을 하며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예후를 세우고,
다마스쿠스의 하자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후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엘리사의 사회적 역할의 장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바뀌어 나타나며,
그는 왕궁과 밀접히 연결되어 특별히 국방 부분에 많이 연계된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온전한 성실로 야훼 신앙을 지킨 하느님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가 행한 것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은 그의 확신 있는 행동의 능력을 보여 준다.
거칠고 단호한 몇 개의 설화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스라엘 역시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주 힘든 시기에
그를 휩싸고 있던 신념과 확신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명기계 역사 속에서
민간설화에서 기억하는 대로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초기 이스라엘에서 혼합주의 경신례의 위협을 거슬러
야훼 신앙을 고수하며 오로지 야훼만을 신봉하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엘리사는 죽었을 때도
살아 있을 때처럼 야훼의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묘사되었다.
신약에서도 구약의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던 엘리사가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낳게 한 이야기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이야기와 함께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명하였다
(루가 4,27).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기적과 예언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하느님의 사람
성 엘리사 님이시여

우리 겨레에게 현명한 수도 성직자가 많이 배출되어
급변하는 현세를 바르게 비출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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