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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15) 죽은 후를 계획하는 사람 / 이길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8 조회수682 추천수6 반대(0) 신고
 
 
 
 
 
 
 
                    죽은 후를 계획하는 사람
 
 
                                                                글 : 이길두(충주 목행동성당 주임신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본당에는 공소가 많아 이것저것 일이 많다.
서둘러야 할 일,
조금 두고 보아야 할 일,
아예 미루어놓아야 할 일,
어느 것 하나 순서를 매기기가 쉽지 않다.
 
큰 도로가 경당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소도 있고,
소방도로가 경당을 치고 가는 공소도 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여러 공소를 통합해 본당을 분가할까?
두 개의 공소를 지어야 하나?
 
공소 신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지어달라고 채근하지만 기껏해야 차로 30분 거리이니
본당 미사에 나왔으면 하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나이 드신 분들을 생각하면 공소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
 
본당에서 제일 먼 소태공소에 사는 허 우슬라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한 84세 고령인데도 본당 평일 낮 미사에 거의 빠지는 일이 없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면 1시간인데, 눈이 와 차 없는 날이면 모를까 지각 한번 하지 않는다.
 
 
하루는 우슬라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삶이 신앙이었고
신앙이 일상 삶이었다.
 
"성당 오시는 것이 힘들어 보여요! 성당 근처에 집을 하나 마련해드리면 오실래요?"
 
"아니여 신부님, 힘든지 몰라. 소태공소에 터를 잡고 살아서 여기서 다니는 것이 더
 좋아요. 몸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오며 가며 예수님 생각, 성모 어머님 생각하면 해야
 할 기도가 많고 그래도 부족해요. 이 나이에 이렇게 누구 도움 안 받고 미사 참례하는
 것만도 너무 과분한 복이여.
 
 눈 쌓이면 성당 못 가는 것, 차 시간 안 맞는 거 그게 불편하지 다른 것은 없어요.
 신부님 보면 자손 같아서 뭘 해 잡수는지 마음이 아퍼.
 신부님 지난번에 반찬 해준 거 시골 노인이 한 음식이라 입에 안 맞을 테지만
 잘 해 드셨어?
 
 신부님이 이미 내 마음에 집을 지어주셨으니까 말씀만 들어도 너무 좋아 몸 둘 바를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굴신할 수 있을 때까지 미사에 빠지지 않고 나갈게.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신부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들고 서 있는 할머니가 백미러로 보였다.
 
말은 마음의 알맹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알맹이가 뭔지 몰라서
집을 마련해드리고자 했다.
 
살아있을 때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보았어도 
죽을 때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우슬라 할머니는 하느님 신앙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한테 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소를 지어 달라 채근하는 사람들보다 1시간 준비해서 미사 오시는 할머니를
보고 배우는 것이 내가 지어야 할 마음의 초막집임을 고백하게 된다. 
 
                     ㅡ 가톨뢱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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