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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32)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7 조회수45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4년1월8일 주님 공현 후 목요일 ㅡ요한1서4,19-5,4;루가4,14-22ㅡ

 

       (32)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이순의

                            


ㅡ내 짝꿍ㅡ

아침에 일어나면 성호를 긋는 일 다음으로 거의 매일 하는 일이 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이불 속에 누워서 더듬더듬 전화기를 찾아 입력된 버튼을 누른다. 수화기를 가져다 귀에 대고 신호음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짝꿍의 음성이 들린다.

"어이 각시 일어났는가? 나 성부와 했네."

 

내 짝꿍은 장돌뱅이다. 서울에 도착하여 처음 딛었던 땅이 용산역이라서 용산에 대규모 야채시장이 있을 때 그곳에서 서울 삶의 첫발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시장에서 종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밤낮이 바뀌는 삶을 살고 있으며 김장철이 끝나는 동절기에는 거의 지방생활을 한다. 그래서 내 짝꿍과 나는 우리 서로 짝꿍이라고 확인하는 전화로 아침을 맞이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짝꿍이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저녁 내내 앓다가 못 일어나거나 약에 취해버린 날은 전화를 받아야 할 배꼽시계가 전화가 안 왔다고 불평을 한단다. 그럴 때 전화가 온다. 걱정이 땅이 꺼져라 오는 전화다. 그래서 나는 꼭 내가 전화를 먼저 한다.

 

내 짝꿍은 사기꾼이다. 나는 워낙에 글쓰기를 좋아해서 신혼시절에도 예쁜 연애편지를 써서 밥상 위에 올려놓고 살짝 외출을 한다. 돌아와서 보면 뜯어지지도 않은 편지가 그대로 물러나 있다. 너무너무 속상했다. 중매로 결혼을 했으니 얼마나 달콤한 편지글이겠는가?!

"안 봐도 다 아는 속을 뭐 하러 읽어?" 라는 게 새신랑의 주장이었다. 항상 뜯기지 않은 편지봉투 때문에 속아서 결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결혼 전에 일필휘지의 명필로 받은 연애편지가 두통 있다. 결혼을 하고 일 년이 다 되어서 속은 결혼이라는 걸 알은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쓴 편지란다. 그러니까 나는 짝꿍이 쓴 편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글씨가 써진 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간직 할 것이다. 그 사람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장가를 들려고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명필의 연애편지를 부탁했을 멀쩡한 청년의 자존심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용은 짝꿍의 마음이라 하니 그냥 생각해도 안타깝고 불쌍하다. 이제 짝꿍에게는 절대로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전화에 대고 편지의 닭살을 모두 토해 낸다. 아들이 닭살이 돋아서 못 견디려 하지만 짝꿍에게 로맨스는 그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살다가 가는 걸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모한 사기꾼 짝꿍을 어찌 만날 수 있었겠는가? 처녀가 그렇게 좋아 한다는 하느님을 택한 남자의 사기행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신혼 시절에는 아침에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오는 짝꿍에게 꼭 해주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신문을 읽어 주는 일이다. 글을 빨리 읽는 습관이 안 되어서 더듬더듬 읽는다. 그러므로 체면이 구겨질까봐 아예 읽지를 않는다. 그래서 더 못 읽게 되고! 나는 아침 밥상을 차려 놓고 매일 신문을 읽어 준다. 사나이는 시사에 밝아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내 짝꿍의 무지한 한을 벗겨 주고 싶어서다. 내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해 주어야 하는 짝꿍인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의 짝꿍은 작은 가게의 경영자로서 손색이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짝꿍은 내가 믿는 하느님만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타고난 체질이 병약한데 내 짝꿍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토록 나에게 지성을 들여 줄 것 같지가 않다. 친정어머니의 말씀처럼 나는 나대로 인생이 고단한 사람의 짝이 되어 살고, 짝꿍은 짝꿍대로 나약한 육신의 소유자인 나를 짝꿍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내리셔서 둘이 서로 도와 하나가 될 때만이 온전한 사랑의 결실을 이루도록 하신 것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알 것 같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는 것을! 주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나 같은 미물이 일생을 겸손한 사람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저녁의 마지막도 언제나 전화기에 음성을 담아 우리 서로 짝꿍이라는 도장을 찍으며 하루를 접는다. 잠자리에 드는 각시와 시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신랑의 엇갈린 생활 속에서도 반드시 주님의 성령이 정중앙에 자리하고 계신다.

"성부와 꼭하고, 차조심해."

"어이! 각시 문단속 잘하고 자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안심이 되는가? 되었제!"

 

ㅡ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에게는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4,18-1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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