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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17일 야곱의 우물- 마태 17, 1-9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7 조회수401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마태 17,1-­9)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한동안 위인들의 자서전이나 그들의 체험과 어록을 엮은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삶을 사는 비법과 인생의 지름길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한테서 삶을 살아내는 지혜와 용기와 열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들의 화려한 이력 앞에 용기가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기가 죽더군요. 그들이 걸어온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들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봉우리들 사이에는 굽이굽이 눈물과 어둠의 골짜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봉우리는 다름 아닌 그늘진 골짜기 덕분에 우뚝 솟을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높은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해처럼 빛나십니다(1­-2절). 이미 모세가 시나이라는 높은 산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대한 적이 있습니다(탈출 24,16 이하 참조). 엿새 동안이나 구름이 산을 덮다가 이렛날에 구름 가운데서 주님이 모세를 부르셨고, 사십 일 주야를 그곳에서 지내면서 모세는 주님께 계약법전을 하사받았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도 하느님의 산 호렙에서 주님과 대면하는데, 바람도 지진도 불속도 아닌 이 모든 것이 지나간 자리에서 주님과 마주합니다. 이때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을 받습니다(1열왕 19,8 이하 참조). 모습이 변하신 예수님은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구약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3절).
 
마태오는 제자들의 반응에 주목합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4ㄴ절) 얼마 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부정하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은 바 있습니다. ‘주님’이라는 그의 고백이 눈에 띕니다. 예수님의 변한 모습에서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이 누릴 주권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듯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4ㄷ절) 천진난만한 베드로의 바람은 소박한 우리의 소망을 닮았습니다. 집까지 지어놓고 하느님 나라가 올 때까지 오래오래 이 영광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고픈 꿈같은 소망. 고통과 죽음 없이 영광스러운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베드로의 이 청원은 말없이 묵살됩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5절)는, 세례 때와(3,17 참조) 똑같이 예수님의 특별한 신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모세와 엘리야가 못다 이룬 일을 완성하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 떨지만 예수님은 편안하게 그들에게 다가오시어 손을 내미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7절)

 
아마도 오늘 복음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려 온 메시아의 모습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장면을 혼자 보기 아까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인 앞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멋지게 드러내실 수 있는 기회는 마다하시고 인적이 드문 높은 산에서 몇몇 제자한테만 본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미래를 앞당겨 보이신 것일 뿐 그 상태를 오래 지속하지도 않으십니다. 높은 산에서 보낸 시간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한 베드로의 바람은 예수님이 겪으실 십자가의 길을 건너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영광에만 눈이 먼 인생들, 기적을 좇는 우리들의 가벼운 의지를 너무나 잘 간파하셔서인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9절)며 그나마 모든 것을 조용히 묻으십니다. 십자가와 죽음 없는 영광은 예수님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직 가실 길이 남은 그분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성공이라는 영광 뒤에 자리한 고난과 역경의 지루한 시간은 찬란한 봉우리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골짜기를 모른 채 화려한 봉우리에 취해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도 무모한 용기일 테고요. 골짜기 없는 산은 있을 수 없듯이 한숨과 눈물이 없는 영광은 손쉬운 영광입니다.
닮고 싶은 위대한 인물이 여럿 있는데, 성경에서 찾으라면 저는 단연 모세를 첫째로 꼽고 싶습니다. 광야 여정을 이끈 이스라엘의 첫 지도자였지만 그다지 카리스마가 넘치지도 않았고 세상의 영광을 누리지도 못한 모세가 좋습니다. 광야라는 험한 골짜기를 무지몽매한 이스라엘을 이끌고 다니면서,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를 오가며 전전긍긍했던, 자기 역할에 충실한 모세가 존경스럽습니다. 그의 삶은 고단했지만 우리에게 남긴 것은 하느님께 끝까지 순종한 골짜기의 삶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라는 봉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우뚝 솟아 있습니다.
 
엘리야의 인생 역시 그에 못지않습니다. 우상숭배가 대세이던 시대에 혼자서만 거짓 예언자들 무리에 맞서 야훼 예배를 지켜야 했으니 무척 고독한 길을 걸어야 했을 겁니다. 툭하면 숨어 다니고 먼 호렙 광야까지 줄행랑을 쳐야 했지요. 제자 엘리사처럼 배짱이 두둑하지도 못한 못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약 예언자들의 대부가 되어 후배 예언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영광에 싸인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 뭔가를 의논하십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3절) 골짜기의 삶을 산 그들은 영광의 예수님과 한자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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