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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29)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5 조회수46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4년1월5일 주님 공현 후 월요일 ㅡ요한1서3,22-4,6;마태오4,12-17.23-25ㅡ

 

   (29)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이순의

                        


ㅡ윤루가 주교님ㅡ

1984년의 한국 가톨릭교회는 월드컵이 열렸던 열기만큼 뜨거운 신앙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국에 최초로 교황께서 방문하시는 영광과 103위의 성인시성이 겹쳐 있었고, 한국교회가 200년이 되기도 하는 기념 등, 가슴 떨리면서도 동시에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다.

 

그 해의 성직자 수도자들은 평신도들 보다 더 정신없는 한 해였을 것이다. 초대 한국 교회의 신앙의 선조들께서 사제를 기다리는 갈망이 그러 했을까 하는 묵상을 저절로 하게 되었을 만큼 우리나라 우리의 땅에서 교황님을 뵈올 수 있다는 것은 비단 신자들만의 기다림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해 그 여자는 수녀원 울타리 안에서 티 한 점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마냥 철없이 좋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도 건강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묵상과 미사, 작은 노동을 마치고 수업종이 울리면 피곤을 견디지 못하고 마냥 졸다가 수업중인 선생님(?)들께 오리발을 내 밀었던 기억이 나는걸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건강을 타고 나진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고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천사의 모습을 지녔던 자신을 떠 올릴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어느 날 식탁에서는 손님으로 오실 신부님의 이야기로 화제가 분분 했다. 그분의 오르간 반주에 반했었다는 자매도 있었고, 그분의 학식과 재치에 당해 낼 사람이 없다고 하는 분도 계셨고, 한국을 떠나 로마로 가셨다는 분도 있었고, 이번에 교황님의 한국 방문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 하시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 키가 너무 커서 구름 속에 숨은 머리가 안 보인다고 허풍을 떠는 분도 있었고, 아무튼 참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접시가 여러 장 깨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오시면 몇 가지의 볼거리를 마련하기로 했는데 그분께 환영의 인사를 할 자매로 그 여자가 뽑혀 버렸다. 오르간 반주에 반하고, 재치에 반하고, 홀딱홀딱 반했다는 자매들은 다 어디로 가고, 듣도 보도 못 한 그 여자가 뽑혀 버렸다. 그 때도 글재간이 좀 있었던지 무슨 축하의 메시지를 필요로 하면 몇 자 끌쩍여서 읽곤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바보 같아서 그랬는지 어쨌든 뽑혀버렸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훌륭하신 신부님께 대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신부님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를 않아서 수업 때 배웠는지 훈화로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성인의 (아마 소화데레사로 기억됨) 일화 중에 <주님께서 제 눈 안에 들어와 계신다고 해도 제 눈이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할 만큼 그 성인은 주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리워했다는 말씀을 그 무렵 스승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신부님께서는 오셔야 할 날이 되어 수녀원의 만찬(?)에 앉으셨고, 싱싱한 처녀들인 예비수녀님들은 준비된 비밀들을 풀어 놓을 준비를 하고, 초대된 만찬 상 앞에 나란히 섰다. 그 여자가 나가서 초대의 인사를 마치면 준비된 비밀들을 펼쳐 놓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까지 그 여자가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르간 반주를 들어 보지도 못 했고, 키가 대나무처럼 큰지 아니면 전봇대처럼 큰지 알바가 아니라서 도무지 詩상(?)이 떠오를 영감이 서지를 않는 것이었다.

 

어떤 자매가 빨리 나가라고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성화 속 최후의 만찬 상처럼, 그림 속 예수님을 닮은 신부님 한분이 가운데 앉아 계시고, 양쪽으로 어른수녀님들이 쫘아악 앉아 계신다. 그래도 환영하는 자의 이미지 관리는 해야 되었으므로 얼굴의 근육을 땡겨 가벼운 미소를 유도하고, 사뿐 사뿐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환영의 메시지를 던졌다.

<신부님 같이 훌륭한 분을 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그 순간?! 신부님께서는 갑자기 의자를 뒤로 팍 밀며 벌떡 일어났고, 얼굴 전체가 홍시감이 되더니, 전봇대처럼 크신 키를 꾸부려, 작은 그 여자의 키에 맞추어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고 계셨다.

 

그 크신 키에 눌려서 놀라고, 밀쳐지는 의자 소리에 놀라고, 그렇게 새빨간 얼굴의 백인 남자를 처음 봐서 놀라고, 놀라고, 놀라고, 또 놀라느라고 그날 그 신부님께서 뭐라고 답례를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진짜로 넓은 손바닥과 악수를 했다는 생각뿐, 쿵쾅거리는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가 달아서 자기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었다.

 

준비된 볼거리가 끝나고 물러났을 때, 어떤 자매가 그렇게 큰 실수를 하는 인사가 어디 있느냐고 화를 냈었다. 신부님을 일어서게 하지 않는 인사를 해야지 그렇게 훌륭하신 신부님을 일어서게 했다고 궁시렁 거렸지만 그 여자에게는 스승 수녀님이 아닌 그 자매의 잔소리가 별로 중요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주의 공현 대축일 서울 주보에 그 신부님의 얼굴이 올라 있다.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이시다. 너무나 반가워서 읽어보니 벨기에 헨트교구 교구장으로 서임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19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임명하셨다는 소식이다. 1941년 벨기에에서 났으며, 1961년 살레시오회 첫 서원 후 1964년 한국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1970년에 사제수품 하여, 1978년 한국 살레시오회 지부장, 1984년 로마본부 선교 담당 총평의원을 거쳐, 1990년 청소년 사목 총평의원을 역임한 후 ,1996년부터 살레시오회 부총장직을 수행 중이었다.

 

괜히 그 여자는 스스로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런 인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자족감이 들어서 기뻤다. 성인의 흉내는 아무한테나 내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하하하하하 그 날 이후 두 번 다시 뵙지 못하는 이국의 신부님께 축하와 찬사를 우뢰와 같이 보내 드리고 있다.

<축하합니다. 신부님! 경하 드리옵니다. 주교님!>

 

그러나 그때 말해 드린 <주교님 같이 훌륭한 분을 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축하 인사는 못 해 드릴 것 같다. 그 때 그 순수를 그리워하고 부러워하며 미소만 지을 뿐이다. 정신이나 똑바로 차려서 그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나 기억 해 둘걸!!!!!!! 나는 바보야요.

 

ㅡ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태오4,23ㅡ

 

 


                                                -피기 직전의 도라지꽃과 아침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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