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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빛남의 나라(베트남) -♤ / 이제민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4 조회수548 추천수7 반대(0) 신고
    ♤- 빛남의 나라(베트남) -♤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월남이라는 나라로 더 익숙하다. 지명 인명 등을 원어민의 발음에 따라 표기한다는 우리나라의 표기법에 따라 명칭이 월남이 베트남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아메리카로 부르지 않는가? 영국과 독일, 일본은 왜 원어민의 발음으로 부르지 않는가?) 나는 통역하러 온 부인에게 우리가 베트남이라고 하는 당신의 나라를 당신나라 사람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었다. 당신나라에서도 “베트남”이라 하는가? 하고 물으면서 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발음하듯 ‘B'에 힘을 주어 'Betnam'이라고 발음해 보였다. 그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나라의 이름을 발음해주었는데 따라 발음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말로 표기할 수 없었다. “비엔남”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빈남”이라고 하는 것도 같았다. 그는 자기 나라의 이름을 영어 알파벳으로 Viet-Nam 이라고 적는데, 자기 나라에서는 ‘t'는 안으로 삼켜 발음하기에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한국 사람은 V와 B를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를 "Bet nam"으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 Bet nam이라는 나라는 없다. “베트남”이라고 발음되는 나라도 없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발음연습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당신의 나라는 ‘비엔남, 빈남, 빛남’이다.” 빛나는 나라. 외국의 고유명사에 대한 한글 표기법은 원어민의 발음을 존중해주는 듯 하면서도 국적불명의 표기로 만들고 우리 언어의 자존심과 정체성까지 잃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차피 원어민의 발음을 우리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인데 왜 원어민의 발음을 강조할까? Viet-Nam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Bet-nam이라 부르지 않기에 우리가 베트남이라 부르면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으로 그들의 나라를 부르고 있다. 베트남(Betnam)이라 하든지 월남이라 하든지 그들이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전에 부르던 월남을 비엔남도 아니고 빈남도 아닌 베트남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왜 그들의 나라이름을 고집스레 국적불명의 발음으로 표기하여 부르게 하는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중국의 고유명사이다. 얼마 전까지 모택동으로 알려졌던 공산당 서기는 이제 마오쩌둥이다. 외국의 이름을 원어민의 발음에 따라 적다 보니 듣는 사람에 따라 그 표기도 다르다. 그래서 신문마다 한 인물이 다르게 표기되기도 한다. 중국에 가서 “모택동”이라고 하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우리 신문에 난 글자대로 “마오쩌둥”이라고 발음을 한다고 하여 알아들을 중국 사람도 없다. 그들에게는 모택동이든 마오쩌둥이든 똑같이 생소한 이름이다. 우리의 한글은 이 이름을 원어민의 발음으로 표기하기는 역부족이다. 그것은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내 이름은 ‘이제민’이다. 한자로 적으면 ‘李濟民’이다. 하지만 중국 사람은 한자로 표기된 내 이름(李濟民)을 우리말식으로 ‘이제민’이라고 발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의 ‘이제민’ 이라는 발음을 내기위해서는 그들은 내 이름을 다른 한자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韓國을 ‘한국’이라 발음하지 않고 ‘한꾸어’라고 읽듯이. 李濟民을 중국 사람이 ‘이제민’으로 발음하지 않아도 내 이름은 중국에서도 李濟民으로 표기 되어야 한다. 그리고 李濟民으로 적어 놓고 이를 원어민 식으로 발음하라고 그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중국 사람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영어를 강조하면서 영어의 단어를 우리말로 표기할 때 원어민의 발음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Press-friendly”는 “프레스 프렌들리”가 아니라 ‘프레스 후렌들리’로, Orange는 ‘오렌지’가 아니라 ‘오린지’로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에게 ‘프레스 프렌들리’나 ‘오렌지’라고 발음하면 알아듣지 못하지만 ‘프레스 후렌들리’나 ‘오린지’로 발음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차피 우리는 미국식의 발음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표기할 수 없다. 더군다나 Orange의 원산지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사람과 영국사람, 프랑스사람과 독일 사람은 같은 표기를 두고도 각각 다르게 발음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f와 p, l과 r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인수위원장의 말은 옳지만 어차피 우리나라 말에는 f와 p, l과 r의 구분이 없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원어민의 발음대로 표기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각 나라의 모국어를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축구선수 Ronald는 우리나라에서 신문마다 달리 표현된다. 어떤 신문은 '호나우두'로, 어떤 신문은 ‘호날두’로, 어떤 신문은 ‘호날도’로, 그 표현이 제 각각이다. 정작 Ronald에게 자기 이름은 우리가 발음한 대로 호나우두도 호날두도 호날도도 아니다. 저마다 원어민의 발음으로 적으려고 하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말은 원어민의 발음을 정확히 표현하는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하지도 못하는 원어민의 발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표기하는 규정을 정하는 것이 옳다. 마오쩌둥이 아니라 모택동으로, 호나우두가 아니라 ‘로날드’로 하면 된다. 남의 이름을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만들지 않는 것도 우리말의 고유성을 지키는 방편이다. 우리는 남의 것을 존중한다면서 남의 이름을 국제 불명의 나라로 만드는가 하면 정작 우리의 것을 고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왜 우리나라를 원어민의 발음 법칙에 따라 ‘대한민국’이라 부르게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헌법상 ‘코레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역사상 코레아라는 나라는 이 땅에 존재해 본적이 없다. 비슷하게 발음되는 ‘고려’는 있었어도 코레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의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코레아’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Korea'로 할 것인가 ‘Corea'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들은 원어민이 어떻게 발음을 하든 자기나라의 표기 식을 주장한다. 그들은 독일 원어민이 자기 나라를 Deutschland 로 불러도 독일을 Germany로 부른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의 지명과 인명을 그들 식으로 발음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한국 또는 대한민국이라 부르든 이에 상관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자기네들 식으로 Korea로 부른다. 그것은 전철에서 역명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종로든 영등포든 그 어느 역도 한국 사람이 발음하는 대로 발음되는 것이 없다. 우리가 원어민의 언어를 주장하는 사이 그들은 우리나라에서조차 우리의 발음을 묵살하고 그들의 표기대로 우리의 지명을 그들 식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영어로 회화할 때는 우리조차도 우리의 발음을 포기하고 그들의 발음에 따라 발음하도록 한다. 우리의 전철역들이, 우리의 이름들이 우리의 발음이 아니라 그들의 발음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저게 언어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을 금하지 못한다. 외국의 고유명사를 원어민의 발음으로 발음하라고 강조하기 전에 우리 언어로 발음하는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언어는 관습이다. 관습에 따라 변한다. 나는 모택동이 우리 신문에 국제 불명의 발명으로 이상하게 표기되지 않고 다시 모택동으로 표기되기를 바란다. 나는 중국 사람들이 내 이름을 어떻게 부를까 궁금하다. - 이제민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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