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믿고 싶지 않아, 믿을 수 있어/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3 조회수506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마르 9,31-3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곧이들으려고 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절박한 죽음에 관한 말씀을 듣기를 원했던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거부하지 말고

준비하고 받아들이라고 하시며

죽음을 뛰어 넘어 희망으로 전환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지만

죽음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과 “죽다”라는 말은

특별하게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거부하는 게 당연합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일을 본다면, 우리는 눈을 감아 버립니다.

고약한 냄새가 나면, 코를 막습니다.

보기가 흉하면, 이쁘게 보이게 하거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정상적이고 자연적으로 얼마 동안은 그 상실을 철저하게 거부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거부가 계속되고

이 죽음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억누르면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합니다.

어쩌면 능숙한 조련사처럼 되려고 하는 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것을 믿지 않을 거야.”라는 식으로 내적인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여정에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훌륭한 영웅”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과 삶의 본질을 아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들입니다.

우리의 거부는 얼마동안 희망을 북돋고 절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끌거나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희망과 승리를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으로만 이끕니다.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그것을 거부했던 12살 딸이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께 한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죽을 거예요.

그러나 좋아요.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니까요.”

이 말은 그 소녀가 죽음을 수용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말들은 그녀의 부모들이 “믿고 싶지 않아.”라는 데서

“믿을 수 있어.”로 바뀔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고 물으셨다(요한 11,26).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