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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5)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 김충수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05 조회수853 추천수10 반대(0) 신고
 
 
 
 
 12월 첫째주 대림 제1주일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37-44)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글 : 김충수(서울 여의도성당 주임신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은 6.25전쟁과 1.4후퇴라는 무서운 전란의 시기였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동네어른들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어디론가 부랴부랴 피난을 떠났고, 행여 아이들을 잃어버릴세라 새끼줄로 허리를 묶어 어른들의 허리에 연결해 끌고 다녔다.
 
 
나는 그때만 해도 뭐가 뭔지 영문을 몰라 그냥 따라다니며 무섭기도 했지만 기차놀이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때때로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산발적으로 포탄을 내리 쏟아내고는 '쌩~' 하고 지나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쇳덩어리가 날아다닐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 포탄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번쩍 섬광을 낼 때면 겁이 덜컥 나서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곤 했다.
그랬던 내가 용케도 파편 한 조각 맞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엄청난 기적이요 은총이었다.
 
 
 
기도가 무언지도 모르던 철부지 어린 나는 그저 엄마 따라서 성호경이 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이마와 가슴에 십자가를 그었다. 그래야 성모님이 도와주셔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엄마가 가르쳐주셨을 뿐이다.
 
아직 대여섯 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였으니까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못했지만 정신없이 갈팡질팡 술렁이는 어른들의 표정 때문에 무섭고 불안한 것이었다.
 
 
지금은 죽음이 무섭다.
솔직히 말해서 싫다.
어리석게도 죽음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오늘 복음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늘 깨어 있어라."
하는 경고의 말씀이 들려온다.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말씀이다.
 
죽음이라는 건 생각하기도 싫고 아직도 한참이나 먼 훗날의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어김없이 지금 이 시간에도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죽음을 피해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차라리 전쟁통에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어렸을 때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다.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마음을 바꾸어 어린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고 하시지 않았는가.
 
마음을 바꾸어 어린이같이 된다는 것,
그것은 엄마 치마폭을 피난처로 삼는,
어머니를 신뢰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이 비워지면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약해 보일지라도 언제나 하느님의 품안을 피난처로,
평화의 거처로 삼는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나를 버리고 욕심없이,
사심없이,
잘난 체하는 마음 없이 살아가고 싶다.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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