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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6 조회수73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루카 14,15-24)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큰 잔치"는 성체성사를 말하며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초대받은 이들"은 모든 인간을 말한다.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라고 말한 이 사람은 행복의 원천이신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으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다른 곳에 있다든지 아니면 아직 하느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결국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 축복과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정말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행복은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이고 찾고 있는 행복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다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라고 초대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초대를 받고 각자 다른 이유를 대고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둘째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셋째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라는 이유이다.

이 말을 듣고 주인은 노하여 종에게 "어서 고을의 길거리와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절름거리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하고 일렀다.

 

이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마르 10,23)라고 말씀하신 부자들이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젊은 이에게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 21)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10,22)라고 말씀하신 부자들이요 그들은 곧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이다. 주인이 노하여 고을의 길거리와 골목으로 나가 데려 온 이들은 의지할 곳 없는 소외당하고 가난한 이들이요, 병자들이다. 인간은 부자일 때에는 아쉬운 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초대에 쉽게 응하지 않지만 배고프고 가난한 이들 오갈 데 없는 춥고 병든 이들은 자기들을 초대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쉽게 응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잔치의 초대를 거부한 세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밭을 샀다."는 것은 재물을 하늘에 쌓지 않고 땅에 쌓는 사람을 말한다. 즉 재물을 땅에 축적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가 12,20-21) 말씀하셨다.


두 번째,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라고 말한 사람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이다. 즉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가 8,14) 사고 파는 장사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늘 한푼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네들의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즉 자나깨나 세상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첫째와 두 번째 사람들이 같이 사용한 동사는 "보아야 하오. 보려고 가는 길이오."이다. 즉 "보러 가다"라는 동사이다. 늘 바쁘게 보러 가기는 가는데 무엇을 보러 가는가? 그네들의 모든 관심은 또는 인생의 길은 세상 것들을 보러 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늘 세상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보러 가는 그네들의 인생 길이다.

 

이와 반대로 동방에서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이 테어난 곳을 찾아가서 그분께 경배드리러 가기 위해 그들을 인도해주는 별을 보고 떠났고 결국에는 그들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 예수님이 죽으신 후 무덤에 갔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사도들에게 알렸을 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루가 24, 12) 우리가 무엇을 보러 가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무엇에 관심을 갖고 보려고 가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를 것이고 도달하는 목적지도 다를 것이다. 세상 것을 보려고 하면 세상 것들만 보일 것이고 예수님을 보려고 하면 예수님이 보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관심은 모든 것에서 예수님을 보려고 해야 한다.


셋째는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장가를 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방금 장가를 든 사람의 관심이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아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쓰게 되어 마음이 갈라집니다."(코전 7,33)라고 말씀하셨듯이 방금 장가를 든 사람은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루가 8,14)을 말한다.

 

오늘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이미 모두 다 준비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하느님의 나라에 잔치에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략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준비한 잔치에 초대받아 왔으면서도 예수님 마련한 음식을 먹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있거나 또는 다른 음식을 먹으려 한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한 잔치상 즉 말씀과 미사성제 그리고 여러 가지 성사 등의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가?.

                                       - 유광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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