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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1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1 조회수604 추천수8 반대(0) 신고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1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성호경에 대한 새로운 발견- 성호경으로 하느님 부르기 . ~♣


리가 보통 성호경에 대하여 알고 있는 신앙 상식은 생각보다 그리 실질적이지 못합니다.

천주오상 - 예수님의 십자가 상 다섯 상처.

정도의 내용을 알고는 있지만, 성호를 그을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호경[聖號經]의 뜻은 차라리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편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지금 성호를 긋고 있는 ‘내가 하느님을 큰 소리로 울부짖듯이 부르는 기도’가 바로 성호경입니다.

그것도 바로 내 인격과 삶에 오시라고 부른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성부-성자-성령’을 모셔서 나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초대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평소에 성호를 긋는 순간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성호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한 번도 진심에서 애절하게 하느님을 부르지 않은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오히려 솔직히 이야기 한다면, 내가 왜 성호를 긋는지 굳이 그 이유도 모르겠고 그 시스템 안에 무엇을 담거나 채울 의사도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아주 공허하게 거의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팔을 휘저을 뿐입니다.

또 성호를 성의껏 긋는 분의 머릿속도 별 소프트웨어가 없이 텅 비어있기  쉽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성호경은 참 정성껏 긋기는 하지만, 머릿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여 죄를 짓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

주변에서 가끔 로또 복권과 같은 것을 긁을 때 애절하게 성호를 그으면서 “당첨만 되면, 10분의 1을 바치겠나이다.” 하는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이나, 시험을 보면서 연필을 굴리기 전에 성호를 긋는 것 정도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또는 주일날 그날의 미사 전례 때의 성가 번호로 로또 번호를 맞추는 분도 계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부르기는커녕 입도 뻥긋 못하는 현실은, 성호경으로 우리 인격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능이 누락된 채 헛돌아 간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가장 짧은 기도인 성호경마저 내 삶에서 겉돈다는 이야기는 다른 기도를 바칠 때 제대로 시작도 못하는 현실뿐 아니라, 하느님을 불러야 하는 기도가 하느님을 모욕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까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럼 이제부터 성호를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처참한 영성 부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성호경의 기초적인 시스템과 기능을 살펴봅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는 말의 틀[Hard ware]로 구성된 성호경은 입이나 귀로 기도하며 긋습니다.

평소에 여러분이 스스로 말하며 듣게 되고 미사 중에는 사제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하는 부분을 신자들에게 들려주면,

신자들이 “아멘”하고 응답하는 형태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성부’라고 말하거나 내 귀에 그 말이 들려올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립니까?

성부는 어떤 분입니까?

우주만물을 만들어 주신 분이라는 것은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정작 성호를 그을 때 그 내용을 머릿속 에 떠올리고 마음속에서 동의 하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자꾸 우주니 세상이니 거창한 면만 들먹이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은 쏙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하며‘우리 모두’를 강조하는 웅변조의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단 한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허다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하는 기도가 내 귀에 들어올 때,

“아! 나를 만들어주신 바로 그분이구나!”

하는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떠올라야 합니다.

좀 어려운 말로 실존적인 깨달음이 있어야합니다.


그 다음으로,

“성자와”

하는 말씀이 사제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에는 내 머릿속에 어떤 거룩한 생각이 떠올라야 할까요?

앞에서 공부한 것과 같은 흐름을 따라간다면

“바로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야!”

하는 내용정도는 머릿속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성령의”하고 기도하는 부분도,

“나를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시는 분! 내 삶을 섭리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호경을 그을 때마다“아멘”하고 힘차게 응답하는데, 이 ‘아멘’의 말뜻을 보통‘그대로이루어지소서’ 하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객관화 시키면 나와 아무 상관없는 말이 됩니다.

누가 그대로 이루겠다는 것인지‘아멘’의 주체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자기네들끼리 이루어지거나 말거나 내가 알바가 아니야!”하는 말과 이음동의어가 됩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삶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아멘’이란 응답의 요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할 점은 ‘아멘’이란 아라메아말[셈족에 속하는 아람인의 언어]은 우랄알타이어 계통으로 우리 민족의 말과 같이 알타이 족이 쓰던 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말이 꽤 있는데,“아빠”하고 부르면 둘 다 쳐다봅니다.

아라메아말로 ‘아빠’가 우리말로도‘아빠’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계통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도 우리말에‘아멘’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 할아버지들께서 누군가 참 좋은 말을 하면 무릎을 탁 치시며“암! 그렇지 그렇고말고!”하면서 맞장구를 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감탄사로 쓰이고 있는 ‘암'[Am]이 바로 ’아멘‘[Amen]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둘 다 “맞습니다.”, 또는 “그렇습니다.”하는 전인적 동의를 의미합니다.

영어로 하면“All right! Let's go!"입니다.

그렇다면 성호경을 그을 때 우리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올라야 하겠습니까?

“나를 만들어 주시고, 구원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의 이름으로. 암!

  그렇고말고.”

하며 맞장구를 치는 내용[Soft ware] 이 리듬감 있게 담겨야 합니다.

성호경은 이렇게 역동적인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성호경은 하느님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분을 부르는 수많은 방법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호경의 형식[Hard ware]안에 합당한 내용[Soft ware]이 담겨야 성호경을 통하여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내 삶 안에 모시려는 내용을 연습 없이 성호경에 담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식탁이나 책상에 붙여놓고 성호를 그을 때마다 연습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부르는 것이 어색하겠지만, 자꾸 반복하여 연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분을 부르거나 초대하거나 여러 부탁을 성호경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상 기도의 작은 깨달음이 반복되어 각인되면 우리는 자기 몸에 십자가를 그으면서 하느님을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도대체 왜 사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도통 알 수가 없는 현실의 혼란스러움이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더라도‘성부-성자-성령’을 제대로 부를 수만 있다면, 그 엉킨 실타래와 같은 세속 생활이 신앙적 삶의 데이터로 정돈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미사를 시작하는 성호경으로 이어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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