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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48) 수난, 부활의 서곡 / 김충수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31 조회수552 추천수4 반대(0) 신고

 

 

 

                            수난, 부활의 서곡

 

 

                                                      글쓴이 : 서울 여의도성당 김충수 신부님

 

 

4월 첫째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14-23.56)

 

 

 

소신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성지 가지를 들어봤다.

운동장에서 성지 가지를 들고 성당으로 행렬해 들어가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너무나 새롭고 흥미로웠다.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2천 년 전 헤브레아 아이들이 손에 손에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님을 환영할 때의 기분이 그랬을까.

 

오늘 우리도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고 성당에 들어왔다.

그리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을 열창하였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 예수님의 명성은 치유이적과 구마이적뿐 아니라 빵의 기적과 죽었던 나자로의 소생이적 등을 통해서 엄청난 기대와 호기심으로 군중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리고 남을 만한 것이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의 구비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위상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전능하신 힘을 갖고 불패의 구세주로 입성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제 곧 그들의 원수인 로마를 정벌하고 전 세계에 이스라엘의 깃발을 드높이 휘날릴 것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며칠이 안되어 유대인들은 갑자기 폭도로 돌변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입지가 난처해지면서 꾸며낸 살인극이긴 하지만 유대인들도 동감할 만한 일이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라기보다그들의 기대가 어긋나기 시작한 데서부터 사태는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하던 치유이적이나 구마이적은 물론이요 빵의 기적도 행하지 않고 더구나 로마에 저항해서 군사를 모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인에게 하느님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고 적진에게도 평화의 손길을 내밀고 계시는 것이었다.

 

용서와 평화만을 주장하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마저 돌려 대주라는 식의 엉뚱한 소리만 하고 계시니 억울하고 분통 터질 노릇이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다분히 세속적인 완승과 안주에 있었는데,

예수님은

비폭력과 초저항적인 사랑과

무조건적 용서와

한계선이 없는 자비로

바보스러울 만큼 남에게 밥이 되어주라고 주장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영광의 면류관 대신 가시관을 쓰셨으며,

화려한 갑옷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난과 모욕, 처참한 죽음이야말로

사흘 후의 부활을 예고하는 서곡이었다.

 

 

                 ㅡ출처: 가톨릭 다이제스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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