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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하지 못하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3 조회수654 추천수2 반대(0) 신고

 

 

<용서를 하지 못하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 18,21-35)



  유머 비슷한 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못하시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죄짓지 않게 만드시지 못하고, 또 하나는 죄 많은 인간을 용서하지 않는 것을 못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이 용서로 시작하고 용서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용서는 하느님의 용서와는 달리 그 용서의 혜택이 자신에게 주어집니다. 상대를 용서하면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지게 되고 더 이상 다른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논어 옹야(雍也)편 3장에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라는 글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수제자인 안회의 인물을 평하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방법이 있지만 주로 “顔回가,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거듭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해석합니다.


  “遷怒(천노)”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노여워하여 제 3자에게까지 성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과오(이과 貳過)를 저지르는 꼴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용서하였다고 하면서도 언뜻 생각나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아파집니다. 깊은 상처 위에 겨우 아문 딱지를 또 다시 잡아 뜯는 셈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그 아픈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더 이상 내게 영향이 미치지 않아야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런 뒤에야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되며 새로운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의 용서는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게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어느 교우의 묵상 글을 소개합니다.


  6,7년 전 우리나라에 벤처기업 투자 열풍이 분 적이 있었습니다. 몇 달 새에 누가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는 소문과 뉴스가 화제를 이루었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 회사의 가치를 살펴보고 투자하기보다는 주식투자처럼 소문에 의해 투자하였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TV에도 나오고, 신문에서 유망한 벤처 기업인으로 소개되기에 그간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곧잘 나가는 듯 하더니만 이 년쯤 지나니 아예 부도를 내고 사라지더군요. 처음에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해서 투자했고, 두 번째는 이익이 나기에 욕심이 생겨 투자했습니다. 세 번째는 그동안 들어 간 돈이 아까워서 더 투자했습니다. 원금을 찾으려면 조금만 더 도와 달라는 말에 그만 제 스스로를 속이고 말았습니다. 돈 잃고 친구도 잃고 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돈을 찾아 볼 요량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보았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했습니다. 집사람이 처음부터 말렸던 일을 제가 우겨서 세 번에 걸쳐 투자하였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돈만 생각하면 부화가 터졌습니다. 더군다나 한심한 것은 가족들에게까지 신경질을 내게 된 저를 발견한 것입니다. 집사람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짜증을 내는 제 모습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화만 내니 아이들이 제게서 아주 멀어져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는커녕 성질만 내었으니 부모의 말이라 해서 제대로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라고 냉담하고, 성당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아이들 더러는 주일학교에 다니라고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일로 해서 저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정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에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거액을 투자 했으며, 집사람 말도 무시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그 돈을 다른데 투자했으면 얼마큼 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용서가 된 것도 아니고 잊은 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친구를 비롯하여 공연히 가까운 사람들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결국 내 탓인데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털어버리지 못하고 화가 난 상황을 남들에게 탓을 돌린 꼴입니다. 언제쯤이나 제대로 용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도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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