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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가슴아픈 너무 가슴아픈 (가버린 친구에게 용서를 빕니다)
작성자김진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3 조회수1,059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시간 있을 때

천천히

끝까지

읽어 보시고

꼬옥

기도 해 주십시오. 

 

 

 

''''용서''''를 알았을 땐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

가슴이 터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끼며,

어쩌면 몇배나 더한 아픔을 겪었을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할 길을 떠난

친구와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스무살이던 1977년 가을.

수원에서 있은 새마을 지도자 수련회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전곡에서 왔고

파주에서 왔다는 다른 친구하고

셋이 나란히 자리를 배정 받았는데,

동갑이라는 공감대가 우리를 더욱 친하게 했습니다.

비슷한시기에 군대를 다녀왔고,

파주친구가 제일 먼저 결혼을 했을 때는

신혼집이 아니라

우리들 하숙집이라 할 정도로 붙어 지냈습니다.

 

 불행은 예기치 못한데서 찾아 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만들어 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건축 자재 납품을 하던 전곡친구가

자금 압박에 시달리자

파주 친구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었는데

전곡친구는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고

최고장이 날라 왔을 때는

손도 쓰지 못하고 집을 내 놔야 했습니다.

결혼 5년만에 갖게 될 아기를 기뻐 할 겨를도 없이

급한대로 지하 사글세 방으로 옮기면서도

친구를 원망하기는 커녕

어디서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을 해서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결코

착한 사람 편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야근 하던 날,

연탄 가스가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친구 부인을

하늘 나라로 데려 간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는게 순간이더군요.

그렇게 착하던 친구가 장례를 치루고 나서는

직장도 그만두고  

원수를 찾겠다며 술에 취해 다니다가  

한 밤중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몇달을 없는 소식이 궁금해 

그 친구 고향을 찾았다가

친구 형님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화장되어 뿌려졌다는 강가에서

넋 놓고 친구 이름만 되뇌이다가

친구 형님에게 떠밀리다시피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온통 뇌리에는 한 단어만이 맴 돌고 있었습니다.

 

 "복수"

 

얘기 해 봤자 들어 줄 사람도

이해해 줄 사람도 없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한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란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뻗쳐

놈을 찾아 내기는 해야겠는데 

눈에 띄기만 하면 당장 요절을 낼 것처럼 벼르기만 할 뿐, 

 

 치미는 울화로 피를 말리는 듯 하던 하루하루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차츰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그렇게 아픔이 잊혀져 갈 즈음 

전곡 친구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달려 간 약속 장소에서

난동으로 표현 되어 질 수 밖에 없는 그 날의 일들은,

모든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분노는 사그라진게 아니라

칠년이 넘는 세월을

가슴 밑 바닥에서 숨 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오고

파출소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에 훈방한다는 말을

기가 막혀하며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한 왜소한 체구가 원망스러워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습니다.

그게 십 삼년전

전곡 친구 와의 마지막 대면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그 친구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니

한번 다녀 갔으면 한다는

친구 부인의 전화를 퉁명스레 거절 했지만

계속되는 간곡한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동안 아픈 머리가 견디기 힘들어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가

서두르라는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찾은 종합병원에서

내출혈인데 늦어서 손도 쓸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차마 환자에게는 바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수술을 하면 금방 낫는다고 거짓말을 했다는데요.

 

 느닷없이

"은기가 보고 싶다" 라고 하더니

"그건 안 되겠지?" 한게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랍니다.

의사 말이 삼일을 가지 못한다고 했다는데,

보름을 넘겼고

더 이상은 가망이 없다는 말에 제게 연락을 했다는군요.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친구는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숨을 쉬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니터의 깜박이는  그래프만이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깡말라 버려 뼈다귀에 살 가죽을 덮어 놓은 듯한 몰골이

그가 얼마나 힘든 생을 이어 왔는 가를 말해 주는 듯 했습니다.

원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연민이 마구 솟아 올라

젓가락 같은 손가락을 마디마디 훑으며 물었습니다.

 

 "나다. 친구야. 알아 듣는거니?"

 

 뻣뻣한 손가락은 온기조차 없었고

몸은 미동도 않는데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 날 것 같은 기대감이

마음을 조급하게 합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렴.

이게 얼마만이냐?.

그동안 지내온 얘기도 해야 할 것 아니냐?"

 

 점점 격앙되어 가는 목소리에

간호사가 다가와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야지요.

중환자실인데다가 다른 환자분들도 계신데.

겨우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한마디 했습니다.

 

"미안하다. 그  때 너를 용서했어야 했는데...."

 

 친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간호사가 의사를 데려오고

저는 친구의 반응이 너무 반가워 정신없이 흔들어 댔습니다.

의사의 제지와

간호사의 만류로 옆으로 물러 났고

그들이 체크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친구가 깨어 나기만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밤을 넘긴 친구는 아침이 되자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절차를 밟고  빈소를 차린 후에야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ㅡ몰려 드는 채권자들을 견디다 못해

무작정 멀리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수중에 돈 한푼 남아 있지 않았지요.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했어요.

와중에 큰 애를 잃었습니다.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는 걸

병원비가 아까워 약을 사다 먹였는데

일주일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어린 것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화장을 하고 와서 곧바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사는 게. 사는게 아니더라구요.ㅡ

 

 그랬군요,

그렇게 파주 친구가 비극에 빠져 있을 때

아는 이 하나 없는 남녘 땅 부산에서

전곡 친구도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다시 사업을 시작했고,

친구 부인의 표현으로는 겁이 날 정도로 일감이 몰려 드는데

오히려 거절하느라 땀을 빼야 할 정도였답니다.

사업 시작 삼년도 되지 않아

집을 사고 돈도 제법 모으게 되어

빚도 갚을 겸 제일 먼저 파주 친구 고향을 찾았다가

비극을 전해 듣고는

용서를 구하려 저를 만나러 와서

예의 그 봉변을 당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 나네요.

그 날 친구는 저를 보고 일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곧 바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 용서 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어 버린 저는

무릎 꿇은 친구에게

사정 없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내리쳤던 거지요.

손에 닥치는 대로 마구 집어 던졌고 

악에 바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었습니다.

 

''용서라는 말로 모든 걸 되돌릴 수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널 용서 한다 해도

나만은 죽어도 널 용서 못 한다''고.

 

 ㅡ오로지 친구에게 용서를 받겠다고 떠난 사람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돌아 와서는

통곡을 하며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더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멍'하니 창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탈진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더니 얻은 것이 거식증이데요.

저주 받을 병이지요.

어떤 날은 거의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하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일에 매 달리는데

누적된 과로와 심한 영양결핍으로

한달에 서너번은

응급실에 실려 가서 영양주사를 맞아야 했어요.

의사들도

저런 몸으로 어떻게 돌아 다니는가 혀를 내두르더라구요.

질긴게 사람 목숨이네요.

그렇게 십여년을 살아 왔으니,,,,ㅡ

 

일년에 두 번씩은 제가 사는곳을 찾아 왔었다는군요.

가게를 옮기면 

전화 번호를 알아 내어 부인에게 알려 주었고요.

 

 타향살이가 너무 외롭다며

사업을 정리하고 서울에 온지 일년도 안 되었답니다.

조그만 빌딩을 사서 꼭대기층에서 살림을 하고

나머지는 세를 주었는데

넉넉해진 살림에 이제 친구들에게 용서 받을 일만 남았다며 

여러 번 가게 앞까지 찾아 와,

몇 시간이고 주변만 서성이다가

차마

들어 오지는 못하고 애써 발길을 돌렸다니

그 심정이 오죽 했겠습니까?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상주들을 보며

밤새 상념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 간다는 작은 아들의 모습은

더욱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제대를 차린 후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아직

죽음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아빠와의 헤어짐을 느겼음인지

슬프게 울던 모습은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유난히 아빠를 따랐고

친구도 유독 예뻐했었다는데

그래서인가

위로해 주느라 끌어 안아 주었더니

흐느낌이 그대로 전헤져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밤을 지새우고

염습 시간이 다가 오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슬픔에 겨워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본당 연령 회원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다가 

마뜩치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이럴 때

딱히 도움을 요청할 가까운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이

공연스레 서글프기만 합니다.

 

 입관실에서 혼자 수의를 정리 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연령들의 수의를 점검하고 준비 해 왔지만, 

백지 하나를 펴고 접는데도 감회가 남 달랐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가위로 입고 있는 옷을 잘라 내면서

친구 얼굴을 마주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다,-  

 

''오랜만이지?'' 

 

-보고 싶었다. 잘 지냈니?- 

 

''그래, 나두 보고 싶었어'' 

 

-고맙다.- 

 

''뭐가?'' 

 

-이렇게 와 줘서-  

 

''당연히 와야지. 그리구 친구 사이엔 고맙다는 말 하는거 아냐'' 

 

-그래두- 

 

 옷을 벗겨 내리는데

혼자서도 번쩍 들어 올려 질 정도로 가벼운 몸에

마음이 격동되고

복 받혀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한동안 가만히 서 있는데

등을 어루만지는  친구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울지 마, 괜찮아-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구나.'' 

 

-아냐, 내 잘못인걸.- 

 

''찾아 왔을 때 들어 오지 그랬니?''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 했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먼길 왔다 갔다 힘 들었을 텐데'' 

 

-오는 길 설레임으로, 가는 길 기쁨으로 가득 했었다- 

 

''미안하다'' 

 

-이제 그만 울어라- 

 

''안 울게'' 

 

-웃으면서 보내 줄래?- 

 

''그래, 웃으면서,,,,'' 

 

 눈앞이 더욱 뿌옇게 흐려져 왔습니다.

웃어야 하는데.

 

 염습이 시작 되었습니다.

아리 마태아의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몸을  정성껏 닦아 드렸듯이,

알콜 적신 탈지면으로 친구의 몸을 닦아 냈습니다.

대학생인 딸과  아들에게는

손과 발을 닦아 주게 했습니다. 

뼈다귀만 남은 앙상하게 말라 버린 몸이 아프긴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슬픔은 저 밑바닥으로 가라 앉았고

마음엔 평화만이 가득했습니다. 

온 몸에 한지를 두르고

아이들에게 버선을 신기게 한 뒤

없는 살이라도 쓸릴까  

조심조심 속바지와 바지를 입힌 다음

대님을 둘러서 십자로 매를 줬습니다.

팔에 한지를 감고

오른손에 가장 오래 사용하던 묵주를 쥐어 주었습니다.

 

''''친구여,

이 묵주를 가지고 가면 

그 동안 내가 하느님과 성모님께 드렸던

기도와 지향이 그대로 따라 간다네.

이제부터

우리들의 보호자이신 성모님께서 너를 지켜 주실거야.

이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은 기도를 드릴 걸,

후회 되는구먼.

미안하다.

네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모질게 대했던 것,

많이 아프고 힘 들었지?

여기 기도문을 넣어 줄테니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해 주고

그동안 네가 겪어야 했던

몸고생 마음고생,

살아 있는 동안 기도로 갚아 나갈테니

이젠

모두 용서 해 주려무나!"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며

묵주 쥐어준 손에 한지를 둘러 기도문을 넣고 악수를 끼워

저고리 두루마기에 도포를 입힌 후  

친구 부인에게 도포 끈을 십자로 매게 하고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몰아쳐 왔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유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이별의 시간입니다.

얼굴 닦아 드리고 

생전에 못 드린 

하고 싶었던 말씀

지금 나누십시요"

 

 먼저 딸이 나서더니 얼굴을 닦고

 

"아빠 사랑해요. 

엄마 모시고 잘 살게요"하면서  

볼을 비볐습니다.

 

 이어 친구 부인이

 

"우릴 위헤 열심히 살아 준 당신, 너무 고마워요" 

그러더니

얼굴을 메만지며 울기 시작 했습니다. 

아빠와의 마지막이 뭔지도 모를 막내는

엄마하고 누나가 구슬피 울자

따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지켜 보는 마음 가득 아픔이 메어 와

결국 

덩치만 큰 어린 녀석을 끌어 안고 같이 울고 말았습니다.

 

 회자정리라고 했던가요?.

만남에 영원이 있을 수는 없겠지요.

이제 보내야 합니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리고 녀석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이제 먼 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옷은 입혀 드렸는데 얼굴을 가려 드려야 하거든.

그걸 해 줄 수 있겠니?''''

 

 녀석이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 부인에게 머리를 빗기게 하고

녀석에게는 입에 탈지면을 덮게 하고 턱끈을 두르게 한 다음, 

백지로 머리를 싸맨 위를 삼각건을 두르게 했습니다.

 

 '잘 보아 두어라.

이것이 세상 마지막 모습이다.

영원히 잊지 않을게!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잘 가라.'

 

 끓어 오르는 감정을 억눌러 가며 

면모를 씌우게 한 후 끈을 옆 질러 넣게 햇습니다.

철없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더욱 가슴 아팠지만

먼 훗날,

그래도 아빠를 위해 뭔가 해 드렸다는

뿌듯함을 안겨 주고 싶어서 였지요.

 

 안치를 하고

돌아 나오는 길은  

왜 그리 아스라하던지,

울퉁불퉁 헛 디뎌지는 걸음에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겨우 빈소에 도착해

'성복제'

지내는 것을 아득히 바라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누르면 없는 번호가 되어 버린 친구 부인의 전화 안내음만

듣고 또 듣습니다.

화장을 마치고,

내 손으로 한줌이라도 뿌려 줘야겠다는 것을

메몰차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거절하던

친구 부인의 음성이 귓가에서 맴을 돕니다.

 

"여러분의 우정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끝내 주시지요,

이제

더 이상 그이와 연관되어 지는 걸

보고 싶지 않네요."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낮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갈 때나

서울 다녀 온 후, 밤 새 잠 못이루는 걸 보면서

이게 마지막 아닌가 싶어

수도 없이 전화를 드리고 싶었지요.

''차라리 연락처를 몰랐더라면,''

하고 원망도 많이 했답니다. "   

 

부부가

단축 ''1''번으로 저장 해 놓고 한 번도 걸어 보지 못 했던 전화 번호.

아니 죽기 직전 단 한번 사용했던,,,

내가 그렇게 혹독 했던가?

엎드려 용서를 빌 용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했어도

우리가 선물한 목걸이만은 팔지 못하게 했답니다.

우리와 이어지는 마지막 끈이라면서,

그 걸 친구 가슴에 넣어 줬다고 하더라구요.

품고 가라고.

 

 - 듣고 있나요 이 노랠 빌려
힘들다고 와달라고 떼 써봐요
다시 엇갈린대도 더욱 아파진대도 괜찮죠
살아있단 건 아픈 거겠죠
사랑이란 아프려고 하는 거죠
그대 없이 사는 법 나는 알지 못해서
하루 더 조금 더 오늘 더
그댈 사랑할께요 -

 

  언제부턴가

친구가 휴대폰 울림소리로 들어 왔다는 노랬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지난해  봄, 

부인에게 이 노랠 들려 주면서

여기 가사처럼 당신만 사랑한다고 해도 모자랄 터에 

친구들에 가려 소홀 한것 미안했다며

다음세상에서는

당신의 몸종으로 태어 나서라도 꼬옥 갚겠노라고 울먹이더랍니다. 

 

"우정에 빼앗긴 사랑이 얼마나 비참한지 

상상이나 해 보셨나요?"

 

친구 부인의 일침이 아니더라도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가정의 평화는 깨져 버렸으니까요.

어떻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는지.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용서''''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친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어쩌면 친구는

그 말을 듣기 위해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의 아픔으로 끝났으면 되었을 걸,

왜 그를 용서 못 했는지,

십 삼년 전 찾아 왔을 때 그냥 안아만 주었어도 

그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지요.

 

 

 장지가 어디인지 압니다.

파주 친구가 뿌려 진

옛 날

전곡 친구와 고기잡아 나를 불렀던 그 강.

젊은 시절,시간 날 때마다 

셋이 밤새워 매운탕 끓여 먹던 그 곳,

먼저 간 파주 친구와 화해를 하고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그 강변.

가고픈 마음은 끝이 없는데

죄스런 마음이 차마 발길을 이끌지 못 합니다.

 

 

  제가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이제

친구 부인의 없어져 버린 전화 번호를 지우며

하염 없이 시려 오는 가슴에 그리움 담아

차가운 북쪽 하늘의 보고픈 친구들  

명복을 빕니다.

 



 



 묵상 중

기억해 주시면 좋을듯 하여

따뜻한 이야기 (26900) 에서 옮겨 왔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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