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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보무당당하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9 조회수602 추천수4 반대(0) 신고

창세 17,3-9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복을 내리겠다고 아브람을 불러내신 하느님은 
심심하면 그를 불러 약속을 재확인해주셨습니다.

"하늘을 보라,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보라. 나는 네 후손을 저렇게 만들어 주겠다."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 보라,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흔아홉살이 된 아브람의 슬하에는 달랑 이스마엘 하나뿐. 
하느님도 무안하셨던지, 오늘은 아예 아브람의 이름까지 바꿔주십니다.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 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마치 약속의 보증서라도 새로 써주시듯이 말입니다.

그리고는 사라에게 태어날 아들 하나가 바로 그 약속을 실현해줄 징표라고 열심히 설명하시는데(15절 이하)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습니다. 
바람처럼 허한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왔던 이십오년.

이제 되돌아갈 수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울지도 못하고 웃고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이고, 집안 모든 이에게 할례를 베풉니다(23절 이하).

.................

"졸업을 축하합니다. 
이제 졸업장을 모세의 지팡이처럼 내세우고 보무당당 앞으로 나아가세요." 
존경하는 신부님께서 연말에 보내주신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를 읽을 때만 해도, 
'졸업을 하고 어디로 나아갈까?'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보무당당 앞으로 나아갈 곳도 없고, 모세의 지팡이처럼 내세울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갈 곳이 있고, 혹시 내세울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무슨 일을 새로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성경과 함께 살아온 삶"에 대한 체험을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제로 4주 연속 사순특강을 끝마쳤습니다.

한 주씩은 특강을 해본 적이 있지만,
무슨 체험이 그리 많다고 4주를 하나? 
맡아놓고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삶이 무슨 대단한 흥미거리라고 
그것을 한달간이나 계속해서 와 보겠습니까?
그보다는 신부님의 사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곳은 마침 성경말씀에 대한 열성이 남다른 신부님 때문에
렉시오디비나와 성경공부에 총 매진하고 있는 성당이었습니다.

그래서 렉시오디비나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교부들의 주옥같은 말씀들에다
실제 제 삶의 사건들과 함께, 
그때마다 붙잡고 살아나왔던 성경말씀들을 조합해서 들려주기로 하였습니다. 

매시간, 이론과 체험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지금 그분들이 실시하고 있는 렉시오디비나의 지침에 접목시키려 고심하였습니다.

생각은 적중하여  예상치못한 온갖 날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첫주에는 눈이 오고, 둘째주에도 비가 오더니, 마지막 주엔 아예 천둥치고 장대비까지 쏟아졌습니다. 

거기 오신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이번 특강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이제 이런 날씨의 요동쯤에는 눈썹까딱하나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이번 특강을 맡아 그동안의 제 보잘것없는 삶을 반추하고 정리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제 삶 속에 무수한 별처럼 영롱하게 아롱져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돌아보면 한 순간같은 그 짧은 시간에 어쩜 그리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현재의 내 신원을 더욱 확고하게 확립할 수 있었다는 것과
앞으로의 삶의 향방이 하느님께 내맡겨져있다는 의식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허물투성이의 이 변변치않은 저를 보살펴주시고 이끄시는 그분의 손길을 
강하게 느꼈던 축복의 한달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을 끊고,
두려운 내일에 대한 근심을 버리고,
그분의 약속을 믿고 다시 떠나라고 저를 광야로 불러내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보무당당하게 길을 떠납니다.
당신이 부르시는 곳 어디든지.

제가 의지해야 할 지팡이는 졸업장이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매체에서 잠깐씩 비쳐졌던 찰나적인 영광이 아니라, 
바로 제 삶 속에서 보여주신 당신의 영속적인 은총입니다.

그 은총을 받고 또 받으면서, 
그 은총을 깨닫고 알아가면서
저의  믿음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 믿음이야말로 제가 의지해야할 지팡이입니다.

아브라함의 실의와 의혹과 헛웃음도
꾸준한 희망과 온전한 믿음으로 바꾸어주신 당신이기에.
저 역시 이 한 몸을 전부 당신께 내어맡기고 의지합니다.
저의 믿음도 온전히 키워주십시요. 


Beetoven Moonlight sonata o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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