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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6 조회수5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성모 마리아는 성령이 내려오시고 자신을 덮는 것을 수락하여 성자를 자신 안에서 잉태합니다.

  그녀는 율법에 의해 부정한 임신이 가져올 곤란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약혼자에게 파혼당하고 돌에 맞아 죽으며, 거기다가 온 집안이 망신당하는 처참한 상황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의 여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인간적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입니다. 조만간  닥쳐올 고난과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의 세계로 한 발 내 딛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열매를 맺도록 허용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 된 것처럼 하느님께 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바가 있고, 선하게 쓰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러한 마리아의 영성을 자신의 창조신학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 말씀의 탄생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영혼의 섬광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통한 아들의 탄생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가 영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탄생하는데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실체이고 순수한 ‘하나’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 에너지로 충만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분화하면서 성자와 성령을 분출하며 나아가서는 피조물의 세계로 흘러넘치고 한 인간으로 육화하는 역동적 실재이다. “하느님은 관계이시다.”

  “하느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 나는 말하나니, 하느님이 영혼 안에서 탄생하고, 영혼이 하느님 안에 탄생하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전 성서가 씌어졌고, 하느님은 세계와 모든 천사들을 창조하셨다. 결국 모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아들이 탄생하여 우리도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죽음은 다름 아닌 초탈이다.”


  우리가 성령을 자신 안에 잉태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 미래를 꾀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맡겨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미사 신부님의 강론 중에 어느 부부 교우의 사정을 말씀하십니다. 그 부부는 애정이 넘치며, 열심히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굳은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사업이 부도 맞아 망하게 되고,  남편도 암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아들마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그 남편과 아들의 장례미사도 주례하셨지만, 그 자매에게 전화가 오면 가슴이 떨려 제대로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자매는 신부인 자신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는 말을 한답니다. 그 자매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매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맡은 바 봉사도 계속하며 언제나 밝게 지낸답니다. 무언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계신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무척 슬프긴 하지만 원망하기보다 기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답니다.

  그런 그 자매의 의연한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적 무력감을 넘어, 각오가 새로워지며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더욱 절실하게 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교우들의 태도가 바로 성령을 영접한 모습일 것이라고 강론하셨습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겸손 되게 의탁하는 가운데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마땅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하십니다.


  신학자의 난해한 설교나 신부님의 생활 체험에서 나온 강론이나 마찬가지로 나약한 우리로서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굳은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보여주신 모범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어머니도 성자께서도 성부께서도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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