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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절대로 한 푼도 깎을 수 없다 . . . . [서병섭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2 조회수934 추천수14 반대(0) 신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생명의 길로 부르시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또 한 인간이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인 것 같다.

 

시골 어느 본당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가정 방문을 하게 되었다.

한 동네에 이르러 본당 수녀님께서 신자들의 인적 사항을 설명해

주시는 가운데,

그 동네 제일 가는 부잣집에 관한 말씀에 관심이 끌렸다.

 

온 가족이 신자이면서도 그 집 영감님만은 구두쇠가 되어,

교리는 너무 잘 알면서도 세례를 받지를 않아...

역대 신부님들이 거듭 방문을 했으나 끝내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어 보니 호기심이 생겨 우선 그 영감님을 만나기로 했다.

뵙고 보니,

체격이 건장하시고 위풍이 당당하셨다.

공손히 인사를 드리니...

위 아래를 훓어보시며 새로 온 신부냐며 인사를 받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체 하면서 말씀을 드렸다.

 

"영감님, 성당에 좀 나오시지요."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성당에 나가지만,

 나는 죽을 때가 되면 대세를 받고 그 전에는 편하게 하고픈 일이나

 실컷 하고 즐기겠소."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교무금, 헌금, 시간 등 모든 것이 아깝다는 식으로

약까지 올리는 바람에 나도 악담(?)을 늘어놓았다.

 

"관상학적으로 영감님은 필경 마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욕을 해 놓았으니 속이 편치 않았다.

어느 날,

영감님의 딸로부터 급히 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별안간 쓰러지셨는데 자기가 급히 대세를 줬으니

병원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달려가 보니 중풍으로 인해 입이 삐뚤어지고 정신을 잃었는데,

대세를 받자 신기하게도 깨어났다는 것이다.

대세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영감님, 이젠 신자가 되셨으니, 회복되시는 대로 성당에 나오십시오."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을 해 봐도 소용이 없고 보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또 한 마디 쏘아붙이고 나와 버렸다.

 

"영감님은 처음부터 구원받기는 글렀는데 세례만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편히 사실지 두고 보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와 달라는 간곡한 전갈이 왔다.

좀 망설여졌지만 쫓아가 보니,

이번엔 온 동네 사람들이 한 방 가득히 앉아 있는 가운데

영감님이 누워 있는게 아닌가!

 

우선 신부를 부른 이유부터 물어 보았다.

영감님 말씀을 들어 보니,

 

자기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한참 후 하늘에서 굵은 밧줄이 내려와 목을 얽어 하늘로 끌어 올리는데

숨이 막혀 죽을 지경에 이르렀단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큰 칼로 밧줄을 뚝 끊어서 살게 되었고,

그후 눈을 떠 보니 자기 딸이 이마에 물을 붓더란다.

 

듣고 보니 마침 정신을 잃었던 차에 대세를 준 것인데.

공교롭게도 찬물을 이마에 붓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대세 덕분인지, 찬물 덕분인지 알 길이 없다.

 

문제는 퇴원 후였다.

시커먼 뿔이 달린 마귀(?)란 놈이 계속 어른거려서 잘 수가 없어

고민하는데,

딸이 성수를 방 안에 뿌리면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잠시 지나면 창가에서 마귀란 놈이 다시 춤을 추며 어른대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게 되어,

결국 신부를 불러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 당당하던 위풍은 어디로 가고 애원하는 모습으로

[신부 양반]이라고 까지 하는 것을 보니 꽤나 급하셨던 모양이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무당 굿하는 모습을 볼 양으로

신자며 외인이며 다 모여 있었다.

 

"진짜 마귀를 쫓을 수가 있겠소?"

 

영감님이 재차 물으셨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할 수는 있지만... 영감님의 협력이 꼭 필요한데요."

 

거드름을 피우자 영감님은 쉽게 무엇이든 협력을 하겠단다.

동네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는 가운데

드디어 마귀를 떼기 위한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첫째 질문으로 영감님의 재물이 전부 얼마인가,

땅이며, 돈 놀이하는 현금까지 조금도 속여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알아보니,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큰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다음,

이 모든 재산의 절반을 성당에 꼭 바쳐야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방 안 사람들과 영감님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신부가 '돈 독이 단단히 들었다' 생각되는 모양이다.

침묵이 흐른 후,

좀 덜해서는 안 되겠느냐 하며 깎아서 해 달란다.

하긴 요즘 신자분들은 고해성사를 볼 때 보속까지 깎아 달라니까

이상할 건 없지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절대로 한 푼도 깎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방 안 공기가 싸늘해졌다.

영감님의 얼굴도, 방에 모여 있던 신자들과 외인들도

침을 꿀꺽 삼키며 분노의 표정(?)까지 지었다.

짧은 순간 기도를 했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여기서 잘못되면 복음 선포는 끝장입니다.'

 

대답이 없다.

오랜 침묵 후,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누가 팔 소매라도 잡아 주었으면..  하고 기대하면서 방문을 나섰다.

신을 신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여보시오!"

 

영감님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막히는 듯한 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마지못해 들어가는 체 하면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영감님은 자기 재산의 반을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깊은 한 숨을 내쉬며,

다음 성서 말씀을 읽어 드렸다.

 

  -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 13,14)

 

"영감님, 신앙의 보물을 얻기까지 재산의 반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그러나 그 재산은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기에 단 한 푼도

 내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마음이 더 중요했습니다."

 

내 말에 영감님은 물론, 방 안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다시 한번 까무러칠 듯 놀라며 엉겁결에 박수를 쳤다.

마귀 소탕 작전에 필요한 기초 작업이 끝난 셈이다.

 

자! 이제 무엇이 문제랴!

그 후,

그 영감님은 쾌차하셨고,

일급 전교사인 양...

전교로 일과를 삼으시며 모범된 신앙인으로서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인간의 머리로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 길이 없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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