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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스승 브루닉 신부님 . . . . . . [장영희 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1 조회수1,017 추천수11 반대(0) 신고

 

 

 

 

 

 

유학 시절에 쓰던 자료들 사이에서 성경책 한 권을 발견했다.

거의 새것과 다름 없었는데,

앞에는 '영희에게 브루닉 신부가...' 라는 서명이 있었다.

 

오래 전 내가 유학을 떠나기 바로 전 날,

브루닉 신부님이 내게 선물로 주셨던 성경책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브루닉 신부님은 나의 대학 스승님이다.

아니, 단지 스승을 넘어 내 삶의 은인이시다.

신부님이 안계셨으면 나는 아예 대학에 다니지도 못했을지 모르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인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이도(아니, 아이로니컬하게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故 장왕록 박사)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고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쁜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

 

약간 불그스레한 얼굴에 순진하고 맑고 큰 눈,

늘 만면에 미소를 띠시던 신부님은 1학년 전공필수인 영문학 개론을

강의하셨다.

 

그때 나는 서양문학 최고의 고전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이며,

성경에 관한 지식이 없이는 영문학을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신부님은 문학작품을 마치 무슨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온몸으로

연기하시며 강의하셨다.

프란시스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강의하실 때는

온 교실을 정말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리고 다니셨고,

[라 만차의 사람]이라는 돈키호테에 관한 연극을 소개하실 때는

말을 타고 가며 창을 던지는 시늉을 하셨다.

 

교실 밖에서 나를 보시면 신부님은 두 팔을 벌리면서

"마리아(나의 세례명),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라고

당시 유행하던 패티 김의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 중략 -

 

신부님은 성품이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온화한 분이셨지만

나는 신부님이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서강대학교에서는 체육이 대학 4년 내내 교양 필수과목

이었는데,

담당이신 고 교수님은 내게 그 과목을 면제해 주시지 않고

체육관까지 와서 견학을 해야 점수를 주겠다고 하셨다.

 

수업이 있는 본관에서 노고산 밑의 체육관까지는 꽤 거리가 멀고

부분적으로 비포장도로라 사실 내게는 그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체육'을 넘어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더 힘들었다.

 

게다가 비나 눈이 올라치면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그러나 고 교수님은 그렇게 힘들게라도 견학을 하고 페이퍼를

써내야 겨우 낙제점수를 면한 D를 주곤 하셨다.

 

한 번은 소나기가 오는 날 체육관으로 오다가 비포장도로에서

넘어져 진흙투성이가 된 나를 보시더니 비 오는 날은 오지 않아도

결석으로 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되던 해 여름,

일찍 찾아온 장마 때문에 세 번 결석한 내게 교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잊으시고 내게 가차없이 F를 주셨다.

 

나의 충격은 컸다.

교수님에 대한 원망, 억울함, 부당함,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F 라는 굴욕적인 점수를 내 성적표에 담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또 과목 낙제를 하면 다른 과목 성적이 좋아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학칙 때문에

그 학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당시 영문과 과장님이시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갔고,

내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신부님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셨다.

너무나 화가 나셔서 얼굴은 빨개지고 말까지 더듬으셨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신부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이제 20년이 흘렀고,

나는 2002학번 새내기들에게 그때 신부님이 담당하셨던

영문학 개론을 가르친다.

 

알량한 체면 때문에 나는 학생들 앞에서 신부님처럼 그렇게

재미있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며 가르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신부님을 기억하며 새삼 생각한다.

 

'삶의 교통순경'인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제자들을 '지식과 사랑의 욕심꾸러기'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진정 제자를 위해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먼 훗날 지금 내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 중에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지금 내가 브루닉 신부님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기억해 줄른지......,

 

                    -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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