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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1일 야곱의 우물- 요한 5, 17-30 묵상/들어라 !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1 조회수514 추천수1 반대(0) 신고

들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 5,17-­30)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씀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신다. 말씀의 요체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치 모세가 요르단강 동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선포하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모세는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라고 역설한다. 예수께서 강조하는 말씀도 결국은 하느님을 잘 알아 모시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성인도 그의 규칙서를 “아들아, 들어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든 것은 잘 듣는 데서 출발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그 대가를 치른 까닭은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가을 전진상 교육관에서 교류분석 강좌를 들었는데, 우리는 대부분 상대방의 말을 에누리해서 듣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의 말을 에누리해서 듣다 보니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당연한 결과지만 결코 말을 잘할 수도 없다. 지금 세대는 참으로 많은 말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잘 알지 못하고 잘 말할 수도 없으며 결국은 많은 말이 울리는 꽹과리처럼 빈 소리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사에 참례해도 몸만 성당에 있고 마음은 온통 사사로운 일들로 가득 차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귀담아들을 수 있겠는가. 많은 유혹이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사탄에게 이끌리게 되고 삶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내 말을 잘 듣고 하느님을 잘 알아 모시라는 것이다. 잘 알아듣고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아서 잘 모시자! 시편 작가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를 구해주시는 분으로 첫 새벽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고 찬미노래 부르자(시편 46장 참조).

정복례 수녀(성모영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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