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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율법에서 복음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요한복음5,1~18)/ 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0 조회수891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3월 20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요한복음 5,1~18

 

안식일에 베짜다(예수 그리스도=자비) 못에서 병자(율법)를 고치시다.

 요한 5,1~18;마태9,1~8 

 

'베짜다'라는 히브리말은 자비 또는 구제 은혜라는 뜻입니다.

헬라말로는 '베데스다'라고 합니다.

또 자비라는 헬라말은 '엘레모쉬네' 입니다.

이 '베짜타'라는 원래의 말의 뜻은 '모태'

즉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말인 '레햄'(빵)이라는 말에서

'라하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라하밈'이 '자비'라는 뜻입니다(마태 6,2).

 

어린 태아가 어머니 자궁 내에 있는 것이 자비를 받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숨을 쉬면

태아도 숨을 쉬고 엄마가 음식을 먹으면 태아도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약을 먹으면 태아에게 20분의 1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 내에 있는 태반 안에 양수(생수=진리성수)라는

물 가운데서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양수가 미리 터져 나오면 태아는 죽게 되는데,

오늘날에는 양수를 넣어 주어서 태아를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TV 에 나오는

'하인스 워드' 의 경우를 보면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고 갔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지 않고 잘 가르쳐서 세계적인 선수로 길렀습니다.

어머니의  자비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을 시켰어도 자식이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가 자식을 찾는 것도,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형성된 자비의 문제이며 천륜인 것입니다.

모태 안에 있는 태아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어머니와 태아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서 자녀들을 양육 하시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저의 병원에 어느 어머님이 오셔서

어렸을 때 저한테 치료를 받았던 아이가 여자 의사가 되어서 병원에

취직을 했는데,

월급의 10 분의 일인 오십만 원을 월급날이면 먼저 친정에 들러서

친정 엄마한테 돈을 주고 간다고 자랑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딸이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지를 아니하고 묵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 10 분의 1을 바치고 친정 엄마에게 10 분의 1을 드리는 분은,

하느님의 자비와 친정 엄마의 사랑과 자비를 아시는 거룩한 성도로구나! "

십계명의 '부모를 사랑하라.' 는 계명을 영육간에 잘 지키는 분이라고

생각을 하니 듣는 저에게도 기쁨을 되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자기를 낳아 준 분이 부모이지만,

영적으로는 창조주 하느님이 부모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모르고

미워한다고 생각을 하는 수가 있지만,

자기들이 자식을 낳아 길러 보면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사랑하세요.

이것이 이웃 사랑이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마태25,31~46).

 

이제부터는 하느님과 인류와의 관계를 묵상해 봅시다.

우리 인류들도 하느님이 창조하여 하늘 위에 있는 물과 땅 아래에

있는 물 가운데서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양수 (생수=진리성령)라는

물 가운데서만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류도 물 가운데 물 없이는 살 수가 없으며,

공기인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 없이는 못 사는 것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산소 호흡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 보신 분은

어머니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느끼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 14,23).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 가면

말씀의 열매인 사랑을 느끼고, 만지고, 보고 만나게 됩니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도하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십니다.

                                                                                 

갈라 5,22~23 에 보시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9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천주교에서는 친절이라고 번역을 했고

개신교에서는 자비라고 번역해 놓으신 말은,

헬라 원어에서는 "크래스토테스"  즉  "그리스도 "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루가 11,41).

" 엔"는 "Ev(엔)  eimi(에이미)"

즉 안에 있는 "호 로고스" 로 자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인 자비는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주고 헐벗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을 주는 것이 자선이고,

토비트서에서 처럼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 주는 것이

육적인 자선이지만,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을 주는 것이 영적인 자비인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면서

영적인 난치병인 중풍병자는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인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오늘날의 기복 신앙과 율법에 매어있는

성도들을 영적인 중풍병자라는 것입니다.

 

자비의 못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육적인 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병(죄)까지 치유하시는 과정을 예화를 통해서 보여 주시며,

이 영적인 중풍병까지 치유를 받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시며 자비의 큰 샘물인 베짜타 연못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받고 싶으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맛들이십시요. 꿀맛같이 달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랑과 용서와

자비로 저희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시나,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모르므로 말씀을  들어서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받기를 원하나,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베짜타 연못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이 말씀 안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성령의 물 가운데 뛰어들어 물이 발목까지 무릎까지 허리까지 목까지

차올랐을 때(에제키엘 47,4~5), 

이제부터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읽을 마음이 나오고,

세상을 보는 눈이 기쁨과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보며 너무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아버지의 무서운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자비하신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하시고,

 

요한 묵시록에서는 사랑스러운 신랑의 사랑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묵시록 19,5~10).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자비),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은  원어에 보면 다 여성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너의 어머니시다." 라고 하시어서

사도 요한은 성모님을 계속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요한 19,26~27).

 

교회에는 어머니의 인자하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우리들을 낳아서 길러 주신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허락해 주신 어머니같은 인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이 지상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 5,1 -그 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 양문 근처에 히브리 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다.

 

설명 - 베짜타 못은 은혜의 연못인데

영적으로는 구약에서 야훼 하느님 안에,

공관복음(마태 마르 루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요한 복음에서는 말씀 안에,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령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3 그 안에 병든 이와 눈먼 이와  발 저는 이와 손발이 말라비틀어진

  이들이 무리지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절은 생략되어 있으나 스테판 역에 있습니다.)

 

설명 - 소경, 발저는 이, 손발이 마비된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즉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들도 율법에 매어 있으면 영적인 나병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인 난치의 병을 치유하시면서

영적으로 천국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레마(생명의 말씀)로 살리시는 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고, 성사인 것입니다.

이 성사들은 말씀 성취로써 이루어집니다.

 

4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했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테판 역에는 생략이 되지 않고 이 성경의 절이 있습니다.).

 

설명 - 은혜의 못에 맨 먼저 들어간 사람은

기적으로 불치의 병을 치유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적인 뜻은

우리들이 고정관념이나 자기의 의, 편견이나 고집,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유를 받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5 그런데 거기 삼십팔 년이나 앓아 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설명 - 38년은 광야 40년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하느님의 현존(임재)를 느끼고 보고 만나고

듣고 변화가 될 때까지의 기다리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세례받고 3년 만에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3년이, 38년으로 상징됩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50년만에 주님을 만나면,

50년이 베짜타 연못 가에 있던 중풍병자의 38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6 예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또 이미 오랫동안 앓고 있음을

  알고  "낫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설명 -  "낫고 싶으냐?"  병이 낫는 것은 기적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낫고 싶으냐?" 하고 믿음을 물으신 것입니다.

 

7 병든 이가 대답했다.  

  "주님,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이가  먼저 내려갑니다."

 

설명 - 우리들도 이런 핑계를 잘 댑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보았으면

"예.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믿음만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믿고 기도를 드리면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 "예수께서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 가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9 그러자 곧 그는 나아서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설명 -  "침상을 들고 가시오." 라고 할 때 "가시오." 라는

        헬라말로 'aipw(아이로)'라는 말은

        율법을 버리고 부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우리 안에 매어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즉 아들에 매어 있는 것, 남편에 매어 있는 것에서 자유가 와야 합니다.

 

10 그래서 유대인들이 병 나은 이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 침상을

   들고 다녀서는 안 되오." 하였다.

 

설명 - 안식일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들어야 안식일이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주님이 부활한 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11 그가 "나를 고쳐 주신 분이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 하자

 

12 그들이 "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고 말한 사람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설명 - 영안이 열리지 아니해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했으므로 잡아가려고 묻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17,21).

즉 율법에 매어 있어서 영적인 소경들이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3  그러나 병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곳에 군중이 붐벼서 예수께서 떠나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 예수께서 그를 성전에서 만나자 말씀하셨다.

   "건강한 몸이 되었구려. 더는 죄를 짓지 마시오.

   아니면 더욱 고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15 그가 물러가서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고쳐 주신 분이 예수라고 알렸다.

 

16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를 박해했다.

 

설명 -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면서 영적인 병인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는 것을 보여 주시나,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베짜다 못에 빠지는 것이 성령 세례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은혜라는 말로는 '엘레모쉬네' 라는 헬라말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영적으로 모르면 박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도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 하고 응수하셨다.

 

설명 -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입니다.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레마 말씀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안식에 들어가시는 것이 천지 창조를 마치고 7 일째가 안식이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에집트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고,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령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인 것입니다.아멘.아멘.아멘

 

18 그래서 유대인들은 더욱 그분을 죽이려고 했다.

   이유는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신을 동등하게 내세운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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